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28)

상 상 2012. 4. 3. 18:28

[이]세적과 도종에게 명하여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거느리고 후군(後軍)이 되게 하였다.

요동에 이르러 요수를 건너는데 요택(遼澤)이 진창이 되어 수레와 말이 지나갈 수 없으므로,

[장손]무기에게 명하여 1만 명을 거느리고 풀을 베어 길을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에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황제는 스스로 말채찍 끈으로 섶을 묶어 일을 도왔다.

 

겨울 10월에 황제가 포구(蒲溝)에 이르러 말을 멈추고 길을 메우는 일을 독려하였다.

여러 군대가 발착수(渤錯水)를 건너니 폭풍이 불고 눈이 내려서 사졸들이 습기에 젖어 죽는 자가 많았으므로,

명령을 내려 길에 불을 피워 맞이하게 하였다.

무릇 [고구려 정벌에서] 현도· 횡산(橫山)· 개모· 마미(磨米)· 요동· 백암· 비사· 협곡(夾谷)· 은산(銀山)· 후황(後黃) 10성을 함락시키고,

요주·개주·암주 3주의 호구를 옮겨 중국으로 들어간 자가 7만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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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당태종의 도망가는 모습은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요택(遼澤)의 진창 8십리 길을 수레와 말이 지나갈 수 없어

당태종도 말채찍 끈으로 섶을 묶는 일을 합니다.

 

2) 게다가 발착수를 건널때

폭풍이 불고 눈이 내려 수많은 군사가 그대로 얼어죽습니다.

 

3) 고구려에 침략하러 올 때는 별의별 말을 다 하면서 온갖 호언장담과 큰 소리를 치면서 왔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병력으로도 고구려를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다” 느니

“필승의 길이 다섯 가지가 있다” 느니 등등 온갖 호언장담과 큰소리를 다 치면서

고구려에 침입하면 곧 이길 것처럼 허풍을 쳐댔으나,

당태종은 전쟁에서 이기기는 커녕

패전과 식량, 추위로 인하여 그 추운 벌판에서 폭풍과 눈보라를 그대로 맞으면서,

얼어죽는 수많은 병사들을 눈 뜨고 봐야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다.

 

4) 이러한 비참한 꼴을 당한 뒤,

그 후로는 당태종이 감히 고구려에 친정이라는 것을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5) 그리고 고구려 정벌에서

현도· 횡산(橫山)· 개모· 마미(磨米)· 요동· 백암등 10개성을 함락 시켰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도망가면서 다시 다 빼앗겼는데, 한때 당(唐)이 점령한 것만 써 놓았습니다.

 

도망가면서 도로 다 내놓고 간, 진짜 결과는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도독 놈들의 심보를 볼수 있으며 위 기록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 편향된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여기서 눈여겨 봐야 할 사항이 바로

현도· 횡산(橫山)· 개모· 마미(磨米) ·요동· 백암· 비사· 협곡(夾谷)· 은산(銀山)· 후황(後黃)의 10개 성이 고구려 성이라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영토라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현도군과 요동군이 고구려 영토라는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할 것입니다.

 

7) 또하나, 도망가는데도 발착수(渤錯水)를 건널때

폭풍이 불고 눈이 내려서 사졸들이 습기에 젖어 죽는 자가 많았는데,

전쟁 중에는 죽은 병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안봐도 뻔한 일이겠습니다.

 

※ 오늘 기사와 관련있는 신당서 동이열전

 

태종(太宗)이 발착수(渤錯水)[註102]에 이르렀을 때 진창에 막혀서 8십리 정도가 수레와 말이 다니지 못하였다.

장손무기(長孫无忌)· 양사도(楊師道) 등이 1만 여명을 거느리고, 나무를 베어다 길을 쌓고 수레를 연결하여 다리를 놓으니,

태종(太宗)은 말위에서 나무를 져다 날라 역사를 도왔다.

10월에 군사들이 마지막으로 [발착수(渤錯水)를] 건너는데, 눈이 매우 많이 내려,

조서(詔書)를 내려 [군사들이 다] 건널 때까지 횃불을 들고 기다려 주라고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