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23) 안시성 싸움 10) >
강하왕 도종이 무리를 독려하여 성의 동남쪽 모퉁이에 흙으로 산을 쌓고 성을 핍박하니,
성 안에서도 역시 성을 더욱 높혀서 이것을 막았다.
사졸들은 번(番)을 나누어 싸웠는데 하루에 예닐곱 차례 맞붙었다.
충차와 포석으로 그 누첩을 무너뜨리면, 성 안에서도 따라서 목책을 세워 그 무너진 곳을 막았다.
도종이 발을 상하자 황제가 친히 침을 놓아 주었다.
산을 쌓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아 60일 동안 인력을 들인 것이 50만 명이었다.
산 꼭대기는 성에서 몇 길 떨어졌으므로 밑으로 성 안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도종이 과의(果毅) 부복애(傅伏愛)를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산꼭대기에 둔을 치고 적에 대비하도록 하였는데,
산이 무너지면서 성을 눌러 성이 무너졌다.
마침 [부]복애가 사사로이 부대를 떠나 있었는데,
우리 군사 수백 명은 성이 무너진 곳으로 나가 싸워서 마침내 흙산을 빼앗아 해자를 파고 지켰다.
황제가 노하여 [부]복애를 목베어 두루 돌리고,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공격하게 하였으나 3일이 지나도 이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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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오늘도 안시성의 치열한 공방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1) 도종(道宗)이 먼저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안시성 남쪽에 토산(土山)을 쌓아올려
점점 성 높이와 같게 하였으나 성 안에서도 이에 따라 성을 높여 막습니다.
2) 당태종 군은 하루에 6∼7차례 충거(衝車 :큰 나무로 성에 충격을 주는 공성기-攻城器) ·
포거(抛車:돌을 날리는 공성기) 등을 동원, 성을 파괴하면 성 안에서는 곧 목책을 세워 이를 보완합니다.
3) 도종이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60일에 걸쳐 안시성보다 훨씬 높은 흙산(토산-土山)을 쌓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당태종 군은 부복애(傅伏愛)를 대장으로 하는 부대에게 토산의 정상에 올라 수비하게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흙산(토산-土山)이 무너지며 성을 눌러 성이 무너졌는데
이때 성에서 고구려 군이 쏟아져 나와 오히려 토산을 탈취합니다.
이에 당태종 군은 흙산(토산-土山)의 탈환을 위해 3일 동안 계속 공격하였으나 실패합니다.
4) 고구려 군은 성 이외에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60일에 걸쳐 쌓은 흙산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거져얻어, 큰 방어벽을 하나 공짜로 얻은 것이며,
당태종 군은 엄청난 힘을 들여 쌓은 흙산을 고구려 군에게 거져 헌납하여,
엄청난 방어벽을 고구려 군에게 상납한, 설상가상의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5) 따라서 흙산 공방전은 고구려 군에게는 오히려 큰 횡재를 하고 통쾌하게 적을 무찌른 전투가 되어
고구려 군의 사기를 크게 올려 준 사건이 된 것이고,
당태종 군은 허무하게, 큰 노력을 들인 거대한 흙산을 빼앗겨,
순식간에 당태종 군의 사기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전투가 되었습니다.
6) 그러므로 안시성의 고구려 군은 당태종의 대군을 맞이하여,
힘에는 힘으로, 꾀에는 꾀로 당당히 맞서 통쾌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싸움은 날마다 6∼7회의 가열(苛烈)한 공방전이 계속되어 당군이 안시성을 포위한 지
3개월이 지났으나 요지부동, 고구려군의 용맹성에는 당태종도 어찌할 수 없었다.
※ 오늘 기사와 관련된 신당서 동이열전
도종(道宗)은 나뭇가지로 흙을 싸다 [거인(距闉)을] 쌓아 올렸다. 거인(距闉)이 완성되자,
성마루에 몇 길도 못될만치 바짝 육박하였다. 과의도위(果毅都尉) 부복애(傅伏愛)에게 수비하게 하였는데,
[토산(土山)이] 자연 높아져서 그 성(城)을 밀어냈다.
성(城)이 막 무너지는데, 복애(伏愛)가 [이때] 사사로이 제 부서를 떠나고 없어서
오랑캐 군사는 무너진 성(城) 틈으로 빠져 나와 [거인(距闉)을] 점거하여 참호를 파서 길을 차단한 다음,
불을 놓고 방패를 둘러 쳐서 수비를 굳혔다.
이에 태종(太宗)은 노하여 복애(伏愛)의 목을 베고 모든 장수에게 공격을 명하였는데, 사흘 동안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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