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⑳ 안시성 싸움 7) >
황제가 “공을 장수로 삼았으니 어찌 공의 책략을 쓰지 않겠느냐? 내 일을 그르치지는 말라.”고 말하였다.
[이]세적이 드디어 안시성을 공격하였는데 안시성 사람들은 황제의 깃발과 일산을 보고 즉시 성에 올라 북치며 소리질렀다.
황제가 노하자 [이]세적은 성을 빼앗는 날에 남자를 모두 구덩이에 묻어버릴 것을 청하였다.
안시성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더욱 굳게 지키니 오랫동안 공격하여도 함락되지 않았다.
고연수·고혜진이 황제에게 청하여 말하였다.
“저희가 이미 대국에 몸을 맡기었으니 감히 정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자께서 큰 공을 빨리 이루어 저희가 처자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시성 사람들은 그들의 집안을 돌보고 아껴서 사람마다 자진해서 싸우므로 쉽게 갑자기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 저희는 고구려의 10여 만 명의 군사를 가지고도 [황제의] 깃발을 보고는 사기가 꺾이고 허물어졌으니,
[저희]나라 사람들의 간담이 터질 것입니다.
오골성(烏骨城)의 욕살이 늙어서 성을 굳게 지킬 수 없으므로
군사를 옮겨 그곳으로 가면 아침에 다다라서 저녁에는 이길 것이며,
그 나머지 길을 막는 작은 성들은 반드시 위엄을 보고는 달아나고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그런 후에 물자와 양식을 거두어서 북치고 나아가면 평양도 결코 지키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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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오늘부터 본격적인 안시성 싸움이 시작되는데,
먼저 안시성 사람들은 당태종의 깃발과 일산을 보면 즉시 소리지르며 야유합니다.
2) 이에 당태종이 화를 내자 이세적은 성을 빼앗는 날 안시성의 남자들을 모두 구덩이에 묻어 죽이자고 합니다
3) 이에 안시성 사람들은 더욱 결사항전을 하니 당태종 군이 오랫동안 안시성을 공격하여도 안시성은 함락되지 않습니다.
4) 이렇게 되자 당태종은 고연수 고혜진에게 의견을 물어본 것 같고 그에 대해 고연수 고혜진이 의견을 냅니다.
“안시성을 피해서 오골성으로 가고, 거기서 승리한 다음 고구려 서울인 평양으로 직접 가자는 게 좋겠다.”
5) 오늘 기사와 관련된 구당서 동이열전
○ [貞觀 19년(645)]8월에 안시성(安市城) 동쪽으로 진영(陣營)을 옮겨 이적(李勣)이 드디어 안시(安市)를 공격하였는데,
연수(延壽) 등 항복한 무리를 옹위하여 성 밑에 진(陣)을 치고 그들을 불러내었다.
성(城)안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굳게 지키며,
태종(太宗)의 깃발을 볼 때마다 반드시 성(城)에 올라가 북치고 소리지르며 저항하였다.
태종(太宗)이 [이를 보고] 매우 노여워하자, 이적(李勣)은,
“[성(城)을] 함락하는 날에 남자는 다 죽여 버리기 바랍니다.” 하였다.
성(城)안에서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다.
이에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을 시켜 토산(土山)을 쌓아 성(城)의 동남쪽 모퉁이를 공격하였다.
고려(高[구(句)]麗)도 비성(埤城)에다 치첩(雉堞)을 증설하여 저항하였다. 이적(李勣)이
그 서쪽을 공격하여 포석(抛石)과 당차(撞車)로 성루(城樓)와 치첩(雉堞)을 무너뜨렸다.
성(城)에서는 그것이 무너지는대로 곧 목책(木柵)을 세웠다.
도종(道宗)이 나뭇가지로 흙덩이를 쌓아 올려 토산(土山)을 만들고,
그 중간에 다섯갈래의 길을 내어 나무를 걸치고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 밤낮을 쉬지 않으며 [쌓아] 점점 성(城)으로 육박하였다.
도종(道宗)은 과의도위(果毅都尉) 부복애(傅伏愛)를 보내어 대병(隊兵)을 거느리고 산정(山頂)에서 적을 방어하게 하였는데,
토산(土山)이 자연 높아져서 그 성(城)을 밀어내니 성(城)이 무너졌다. 마침 복애(伏愛)가 사사로이 소관 부서를 떠나 있었으므로,
고려(高[구,句]麗) 군사 1백명이 무너진 성(城) 틈으로 싸움을 벌였다.
드디어 토산(土山)을 점거하여 참호를 파서 [길을] 끊은 다음, 불을 놓고 방패를 들러쳐서 방어를 굳혔다.
이에 태종(太宗)은 크게 노하여 복애(伏愛)의 목을 베어 [전군에] 돌렸다.
모든 장수들에게 명하여 성(城)을 쳐부수게 하였으나, 사흘동안 싸워도 이기지 못하였다.
6) 신당서 동이열전
이에 태종(太宗)은 ‘좋다’ 하고, 드디어 안시성(安市城)을 공격하였는데, 함락시킬 수 없었다.
[고(高)]연수(延壽)와 [고(高)]혜진(惠眞)이,
“오골성(烏骨城)[註098]의 녹살(傉薩)은 이미 늙었으므로 아침에 치면 저녁에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오골(烏骨)[성(城)]을 탈취한다면 곧 평양(平壤)도 탈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는 계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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