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20)

상 상 2012. 3. 26. 18:46

<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⑰ 안시성 싸움 4) >

 

황제가 듣지 않고 사신을 [고]연수에게 보내 말하였다.

“나는 너희 나라의 권력 있는 신하가 임금을 죽였으므로

죄를 묻기 위하여 왔는데, 교전하기까지에 이른 것은 나의 본심이 아니다.

너희 국경에 들어오니 꼴과 양식이 부족하여서 몇 개의 성을 빼앗은 것이다.

너희 나라가 신하의 예를 갖추면 잃은 것을 반드시 돌려줄 것이다.”

[고]연수는 이 말을 믿고 다시 방비를 하지 않았다.

 

황제가 밤에 문무관을 불러 일을 계획하고, 이세적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1만 5천 명을 거느리고 서쪽 고개에서 진을 치게 하고,

장손무기와 우진달(牛進達)이 정예군 1만 1천 명을 거느려 기습병으로 삼아 산의 북쪽으로부터 협곡으로 나와 그 뒤를 공격하게 하였다.

황제는 스스로 보병과 기병 4천 명을 거느려 북과 피리를 가지고 깃발을 눕혀서 산으로 올라갔다.

황제는 여러 군대에게 명령하여 북과 피리 소리를 들으면 일제히 나와 힘을 내어 공격하게 하고,

또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조당(朝堂) 옆에 항복을 받을 장막을 설치하였다.

이날 밤 별똥별[流星]이 [고]연수의 진영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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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안시성을 구하러 온 고연수 고혜진의 15만 대군이 왜 실패하였는지를 오늘의 기사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한마디로 당태종이 속임수를 쓴 것입니다.

당태종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고구려에 온 것은 고구려 신하의 죄를 묻기 위해 온 것이지 싸우려고 온것이 아니라고 하고

그 문제만 해결되면 빼앗은 성도 돌려주고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고연수를 속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고연수는 당태종이 큰 나라의 황제이므로 그 말을 신뢰하고 방비를 하지 않습니다.

이틈을 타서 당태종은 고연수를 기습한 것입니다.

 

2) 손자병법에 ‘병자, 궤도야(兵者, 詭道也)’ 즉, ‘전쟁이란, 속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대국의 소위 황제라는 사람이 얄팍한 속임수를 쓰고 있습니다.

중국의 명군이라는 사람의 참모습이 이 모양 이 꼴입니다.

 

여기에서 중국이 그토록 침이 마르게 칭송하는 명군 당태종의 참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당태종은 대국의 큰 황제가 아닌, 쥐새끼의 작은 꾀나 써서 적을 안심시키고,

뒤통수나 치는 소인배라는 것입니다.

대국, 중국의 명군이라는 자가 쥐새끼의 꼼수나 쓰는 자 라는 말입니다.

 

힘있는 큰 나라의 소위 황제라면 당당하게 힘으로 맞서야지

속임수로 안심시키고, 방비를 안 하자, 그 틈을 타서 남의 뒤통수나 치고 있으니,

그게 무슨 대국의 황제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이란 말인가?

사기를 치고, 뒤통수를 때리는 것은 자잘한 쥐새끼나 하는 짓 입니다.

 

3) 이것으로 보아도 중국 사람들은 속임수를 잘 쓴다는 말이 역사적으로 오래된 사실이며,

황제라는 사람부터 써오는, 오래되고 굳어진 관행임을 또 한번 알 수 있겠습니다.

 

 

4) 구당서 동이열전

○ 태종(太宗)은 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몸소 지휘를 하였다. 이적(李勣)을 보내 보병(步兵)·기병(騎兵) 1만 5천명을 거느리고

성(城) 서쪽 산고개에 진을 치게 하였다. 장손무기(長孫無忌)는 우진달(牛進達) 등 정병(精兵) 1만 1천명을 거느리고 기병(奇兵)으로

만들어 산(山)의 북쪽에서 협곡(狹谷)으로 나와 그 뒤를 공격하게 하였다.

태종(太宗) 자신은 보병(步兵)· 기병(騎兵) 4천명을 거느리고 고각(鼓角)을 숨기고 정기(旌旗)를 눕힌채

적의 진영 북쪽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기로 하였다. 제군(諸軍)에 명하여 고각(鼓角) 소리가 들리면 일제히 돌격을 하도록 하였다.

이어 해당 관부로 하여금 조당(朝堂)[註101] 곁에 수항막(受降幕)을 치게 하고, “내일 오시(午時)에 이곳에서 오랑캐의 항복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마침내 군사를 거느리고 진군하였다.

 

5) 신당서 동이열전

○ 태종(太宗)은 ‘오랑캐가 나의 계책에 빠져 들었다’ 하고,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아사나사이(阿史那社尔)에게 명하여

돌궐(突厥)의 기병(騎兵) 1천을 이끌고 가서 유인하게 하였다. 고구려가 늘 말갈(靺鞨)의 예병(銳兵)을 앞세우므로,

사이(社尔)의 군사가 싸우다가 패하여 달아났다. [고(高)]연수(延壽)는 ‘당(唐)[병(兵)]은 상대하기가 쉽다’ 하고 30리 진격하여

산기슭에 진을 쳤다. 태종(太宗)이, “내가 너의 나라에 강폭(强暴)한 신하(臣下)가 있어 제 임금을 죽였기에 그 죄를 물으러 왔은즉,

교전(交戰)을 하는 것은 나의 뜻이 아니다.” 하니, [고(高)]연수(延壽)도 그렇다 하며 행동을 멈추고 기다렸다.

 

태종(太宗)이 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 이적(李勣)으로 하여금 보(步)· 기병(騎兵) 1만 5천을 거느리고 서쪽 산고개에 진을 쳐서

적(賊)과 대적케 하였다. 장손무기(長孫无忌)와 우진달(牛進達)로 하여금 정병(精兵) 1만을 거느리고

[고(高)]구려(句麗)의 후면 협곡(狹谷)으로 나가게 하였다. 태종(太宗) [자신은] 기병(騎兵) 4천을 이끌고 깃발을 눕히고

고(高)[구(句)]려(麗) [진영(陣營)의] 북쪽 산 위로 올라 갔다. 그리고 모든 군사에게 ‘고각(鼓角) 소리가 들리면 돌격하라’고 하였다.

이어 조당(朝堂)에다 장막을 설치하고 말하기를, “내일 한낮에 이곳에서 오랑캐의 항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날 밤에 [고(高)]연수(延壽)의 진영에 유성(流星)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