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17)

상 상 2012. 3. 23. 18:31

<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⑭ 안시성 싸움 1) >

 

황제가 안시성(安市城)에 이르러 군사를 보내 공격하니,

북부(北部) 욕살(耨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 욕살 고혜진(高惠眞)은

우리 군사와 말갈 군사 15만 명을 거느리고 안시[성]을 구원하였다.

 

황제가 근신들에게 말하였다.

“지금 [고]연수에게는 책략이 세 가지 있을 것이다.

군사를 이끌고 곧바로 나아와 안시성을 연결하여 보루로 삼고,

높은 산의 험한 지세를 의지하여 성 안의 곡식을 먹으며 말갈 군사를 풀어 우리의 소와 말을 빼앗으면,

[우리가] 공격해도 갑자기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요, 돌아가려 하면 진흙으로 막혀,

앉아서 우리 군사를 피곤하게 할 것이니 이것이 상책이다.

성 안의 군사를 뽑아 함께 밤에 도망치는 것은 중책이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나와서 우리와 싸우는 것은 하책이다.

그대들은 보아라. 그들은 필시 하책으로 나올 것이니, 그들을 사로잡는 것은 내 눈 앞에 있다.”

--------------------------------------------------------------------------------------------------

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고구려의 중요한 성을 1개 빼앗은 상태로(빼앗은 성, 총 4개) 당태종은 안시성으로 갑니다.

이때 고구려군이 15만 군사로 안시성을 구원하러 옵니다.

 

2) 15만 군사라는 숫자는 대단히 큰 군사입니다. 왜냐하면, 공격측인 당태종이 데리고 온 군사 수가 30만인데,

수비쪽에 군사가 그 반에 해당하는 군사라는 것은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큰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손자병법에 적군보다 10배이면 포위하고, 5배이면 공격하라고 되어 있으니,

2배되는 군사로는 함부로 공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안시성에 군사가 있으므로 앞뒤로 당태종 군이 공격을 당하면 자칫 괴멸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3) 그래서 이때 당태종은 자기가 죽을까 두려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삼국사기 보장왕 편, 뒤쪽을 보면 삼국사기의 저자(著者) 김부식이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았습니다

 

‘유공권(柳公權)의 소설에 이런 말이 있다.

“주필[산]의 전쟁에서 고구려가 말갈과 군사를 합하여 사방 40리에 뻗치니 태종이 그것을 보고 두려운 빛이 있었다.”

 

또 이런 말이 있다.

“6군이 고구려에 제압되어 거의 [위세를] 떨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척후병이 고하기를 ‘영공(英公)의 대장기 검은 깃발이 포위되었다.’고 하자 황제가 크게 두려워하였다.”

 

비록 결국에는 스스로 빠져나갔지만 두려워함이 그러하였는데

신·구당서와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 이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자기 나라를 위하여 숨긴 것이 아니겠는가?’

 

<※ 이런 것을 볼때 김부식을 그냥 사대주의자, 모화주의자라고 몰아붙이기만 할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

 

4) 따라서 고구려군 15만이 왔을 때 당태종의 6군이 제압되었으며,

동시에 이세적 군도 포위되었던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래서 당태종은 전군(全軍)이 괴멸될 상태에까지 이르렀으므로 크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나중에는 비록 스스로 빠져나갔지만 당태종의 위험은 한때 괴멸상태에 빠질 정도여서

당태종의 두려워함이 그렇게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5) 그런데 그렇게 당태종이 위험에 빠진 얘기는 쏙 빼놓고

당태종이 이때에 한가하게 무슨 상책이니, 중책이니, 하책이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춘추필법이며, 이는 나중에 어떤 작자가 소설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6) 오늘의 기사도 신구당서를 재단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