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14)

상 상 2012. 3. 19. 19:03

<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⑪ >

 

이세적이 백암성(白巖城) 서남방으로 진공하고 황제가 그 서북쪽에 이르니,

성주(城主) 손대음(孫代音)이 몰래 심복을 보내 항복을 청하였다.

[그 사신은] 성에 이르러 칼과 도끼를 내던지는 것을 신표로 삼고

“저는 항복하기를 원하지만 성 안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황제가 당나라 깃발을 사자에게 주면서 “정녕 항복하려고 한다면 이것을 성 위에 세워라.”고 말하였다.

[손]대음이 깃발을 세우니, 성 안의 사람들은 당나라 군사가 이미 성으로 올라온 것으로 여기고 모두 그를 따랐다.

 

황제가 요동성에서 이겼을 때에, 백암성이 항복을 청했다가 얼마 후에 후회하였으므로,

황제는 그들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에 노하여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려

“성을 빼앗으면 반드시 그 사람과 물건들을 전부 전사들에게 상으로 줄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이세적은 황제가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이려는 것을 보고 갑옷 입은 군사 수십 명을 거느리고 가서 청하였다.

“사졸들이 다투어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죽음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노획물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이 거의 함락되었는데 어찌 다시 그 항복을 받아들여서 전사들의 마음을 저버리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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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본문은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데 구당서를 보면 내용이 좀더 명확합니다

구당서에 있는 오늘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영(陣營)을 백애성(白崖城-백암성)에 베풀고 성(城)의 공격을 명하였다.

우위대장군(右衛大將軍) 이사마(李思摩)가 노시(弩矢)를 맞자, 태종(太宗)은 친히 피를 빨아 주었다.

장사(將士)들이 이를 듣고 감동하여 힘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 성(城)은 산을 등지고 물가에 바짝 닿아 있는 데다 사면이 험하고 가파랐다.

이적(李勣)이 당차(撞車)로 때려 부수니, 돌과 화살이 성중(城中)에서 빗발치듯 쏟아졌다.

 

[정관(貞觀) 19년(645년)]6월에 태종(太宗)이 성(城)의 서북쪽으로 나아가니,

성주(城主) 손벌음(孫伐音)이 몰래 밀사(密使)를 보내어 항복을 청하면서,

“신(臣)은 벌써부터 항복을 원하였으나, 이 가운데 반대하는 자가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조서(詔書)하여 기치(旗幟)를 내려 주며, “반드시 항복을 하겠다면, 이 기를 성(城) 위에 꽂으라.” 하였다.

[손(孫)]벌음(伐音)이 성(城) 위에 기치(旗幟)를 꽂자, 고려(高[구句]麗)는 당병(唐兵)이 [이미 성(城)에] 올라온 것으로 여기고,

모두 항복하였다. 당초 요동(遼東)[성(城)]이 함락될 적에 벌음(伐音)이 항복을 빌고 나서 다시 후회를 하자,

태종(太宗)은 그의 반복(反覆)에 분노하여 성(城)안의 사람과 물건을 전사(戰士)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다가 손벌음(孫伐音)이 다시 항복하려 하여 이를 취소하니,] 이 때 이적(李勣)은 태종(太宗)에게,

“전사(戰士)들이 시석(矢石-화살과 돌)을 돌아보지 않고 힘을 다해 앞을 다투어 싸우는 것은 노획물을 탐내서입니다.

이제 성(城)이 막 함락되려 하는데 어찌하여 다시 항복을 허락하여 장사(將士)들의 뜻을 저버리려 하십니까?” 라고 하였다.’

 

2) 신당서 동이열전

 

○ 백애성(白崖城)[註090]을 진공(進功)하는데, 성(城)이 산을 등지고 물가에 연해 있어 매우 험하였다.

태종(太宗)이 성벽(城壁)의 서북쪽에 [주둔하고 있는데,] 노추(虜酋) 손벌음(孫伐音)이 몰래 항복하기를 빌었다.

성중(城中)의 [많은 사람들을] 일치시킬 수 없으므로, 태종(太宗)은 기(旗)를 주며,

“만약 항복을 하겠다면 신호로 [이 기(旗)를] 성첩(城堞)에 꽂으라.” 고 하였다. 조금 후에 그 기(旗)가 꽂히자,

성중(城中)의 사람들은 모두 당병(唐兵)이 올라온 것으로 여기고 항복하였다.

[손(孫)]벌음(伐音)이 중도에 후회를 하자, 태종(太宗)은 노(怒)하여 [성(城)을 함락시키면] 모든 포로를 여러 장수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다가 손벌음(孫伐音)이 다시 항복하려 하여 이를 취소하자,] 이 때 이적(李勣)은, “군사들이 앞을 다투어 싸우는 것은

노획물을 탐내서입니다. 이제 성(城)이 막 함락되려 하는데, 항복을 허락하여 군사들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아니됩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