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⑩ >
[이]세적이 포차를 벌려놓고 큰 돌을 날리니 300보 넘게 날아가 맞는 것마다 이내 부서졌다.
우리는 나무를 쌓아 다락을 만들고 밧줄로 만든 그물을 쳤으나 막을 수 없었다.
[당나라 군사가] 충차(衝車)로 성가퀴를 쳐서 부수었다.
이때 백제가 검붉게 칠한 쇠 갑옷[금휴개(金髹鎧)]을 바치고,
또 검은 쇠로 만든 무늬있는 갑옷을 만들어 바치니, [당나라] 군사들이 이것을 입고 따랐다.
황제가 [이]세적과 만나니 갑옷 빛이 햇빛에 빛났다.
남풍이 세게 불자, 황제가 날랜 군사를 보내 충차의 장대 끝에 올라가 성의 서남쪽 다락에 불을 지르게 하고,
불이 성 안으로 번지자 장병들을 지휘하여 성으로 올라갔다. 우리 군사들은 힘껏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죽은 자는 만여 명이었고, 포로된 자는 무적의 군사[승병(勝兵)]가 만여 명, 남녀가 4만 명이었으며, 양곡은 50만 섬을 빼앗겼다.
[황제가] 그 성을 요주(遼州)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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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요동성을 빼앗깁니다.
요동성은 외부지원이 끊긴 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도 굴하지 않고 용맹을 다해 싸웁니다.
그러나 남풍이 불자 당태종은 불을 썼고, 그 불로 인해 성안에서 만여명이 죽어
성안이 어지러워지자 당나라 군사를 막지 못하게 되어 요동성을 빼앗기게 됩니다.
2) 요동성은 수양제의 113만 대군을 포함한 4번의 침략에도 꿋꿋이 견뎌내고
수양제를 4번이나 물리친 무적의 군대인데 화공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3) 그러나 요동성 6만 군민(軍民)은 당나라의 최정예 군사 30만이 수백겹으로 둘러싸고
공격했어도 용감하게 맞받아 싸운 것은 우리조상들의 용맹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우리 후손들은 조상들의 용맹성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우러르며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4) 오늘의 기사와 관련된 구당서 기사
고려(高(구,句)麗)는 우리에게 포차(抛車)가 있어 3백근(百觔)의 돌을 1리 밖까지 날린다는 소문을 듣고 매우 두려워하여,
성 위에 나무를 쌓아 전루(戰樓)를 만들어 날아드는 돌을 막았다.
[이(李)]적(勣)이 포차(抛車)를 벌려 놓고 돌을 쏘아 성(城)을 공격하니, (돌에) 맞은 곳은 다 무너졌다.
또 당차(撞車)로 밀어 누각을 때려 부수니, 내려 앉지 않는 누각이 없었다.
○ 태종(太宗)은 친히 갑기(甲騎) 1만여명을 거느리고 이적(李勣)과 합세하여 그 성(城)을 포위하였다.
조금 뒤 남풍이 강하게 불어오자, 서남쪽 누각에 불을 놓으라고 명하였다.
불길이 연이어 성중(城中)을 휩쓰니, 집들이 다 타버렸다.
전사(戰士)들이 성(城)에 오르자, 적(賊)은 크게 무너져 불에 타죽은 자가 1만여명이며, 포로가 된 정예병 이 1만여 명이다.[註092]
그 성(城)에 요주(遼州)[註093]를 설치하였다.
5)오늘 기사와 관련된 신당서
[이(李)]적(勣)이 포차(抛車)를 벌려 놓고 큰 돌을 3백보(百步) 이상 날려 보내자, [돌에] 맞는 곳은 다 무너졌다.
적들은 나무를 쌓아 누각을 만들고 그물을 이어 [막아]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다시 충차(衝車)로 성벽(城壁)과 성루(城樓)를 때려 부수었다.
○ 이때에 백제(百濟)가 금휴개(金髤鎧)를 바치고, 또 현금(玄金)으로 산오문개(山五文鎧)를 만들어 [보내와,]
사졸(士卒)들이 [그것을] 입고 종군(從軍)하였다.[註089]
태종(太宗)과 [이(李)]적(勣)의 [군사가] 모이자 갑옷이 햇빛에 번쩍거렸다.
마침 남풍이 거세게 불어서 군사들이 서남쪽으로 불을 놓자, 불길이 성(城) 안으로 번져서 집은 거의 다 탔으며,
불에 타 죽은 사람은 1만여명이나 되었다. 사졸(士卒)들이 성벽(城壁)에 오르자 적들은 방패로 막았다.
사졸(士卒)들이 장모(長矛)를 들고 돌격하자 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성(城)이 드디어 무너지자, 군사 1만· 호구(戶口) 4만· 군량 5십만석(石)을 노획하고, 그 땅을 요주(遼州)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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