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⑧ >
왕은 신성과 국내성의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내어 요동을 구원하였다.
강하왕 도종이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고 맞이했는데,
군중에서는 모두 군사의 수가 많고 적은 것이 현저하게 다르므로,
도랑을 깊이 파고 성루를 높이 쌓아 황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도종이 말하였다. “적이 수가 많은 것을 믿고 우리를 깔보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멀리 와서 피곤할 터이니 그들을 치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마땅히 길을 깨끗이 치우고 황제를 맞이할 일인데 적을 임금께 남겨두려고 하느냐?
도위(都尉) 마문거(馬文擧)가 강한 적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장사임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 하고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와 치니
향하는 곳마다 다 쓰러졌으므로, 여러 군사들의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맞붙어 싸우게 되자 행군총관 장군예(張君乂)가 후퇴하여 도망하였으므로 당나라 군대가 패하였다.
도종(道宗)이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니,
우리 군진이 어지러우므로, 날랜 기병 수천 명과 함께 돌격하고,
이세적도 군사를 이끌고 그를 도왔으므로,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여 죽은 자가 천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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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이세적이 요동성으로 다가오고, 당태종의 본진마저 요택을 건너자
고구려 보장왕은 신성과 국내성의 보병과 기병 4만 명을 동원하여 요동을 구원하려 합니다.
이때 당나라에서는 도종(道宗)이 기병 4천 명이 요동성 부근에 있었는데
수비하자는 쪽과 맞서 싸우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으나 도종의 결정으로 고구려군과 맞서 싸웁니다.
양군이 정면으로 싸운 결과 고구려군이 이기고 당나라 군대가 패합니다.
그런데 도종이 패하여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마지막으로 기병 수천으로 항전하고 있을 때,
때마침 이세적의 대군이 도착하여 도종 군대가 전멸 당할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2) 이리하여 신성과 국내성의 지원군은 요동성에 합류하지 못하게 됩니다.
3) 4만 중에서 천여명이 죽은 것을 크게 패했다고 표현 한 것은
조금 패한 것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한 것으로, 말도 안되는 표현입니다.
4) 오늘의 삼국사기 본문 기사도 구당서와 특히 신당서의 내용을 재단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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