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10)

상 상 2012. 3. 15. 18:38

<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⑦ >

 

여름 4월에 [이]세적이 통정(通定)으로부터 요수를 건너 현도에 이르렀다.

우리 성읍들은 크게 놀라 모두 성문을 닫고 지켰다.

부대총관(副大摠管)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이 병사 수천 명을 거느리고 신성에 이르자,

절충도위(折衝都尉) 조삼량(曹三良)이 기병 10여 명을 이끌고 곧바로 성문으로 압박해 오니,

성 안에서는 놀라 소란해져서 감히 나가는 자가 없었다.

 

영주도독 장검(張儉)이 호병(胡兵)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나아와,

요수를 건너 건안성(建安城)으로 달려가서, 우리 군사를 깨뜨리고 수천 명을 죽였다.

이세적과 강하왕 도종이 개모성(盖牟城)을 쳐서 함락시켜, 1만 명을 사로잡고 양곡 10만 석을 빼앗았으며, 그 땅을 개주(盖州)로 삼았다.

 

장량(張亮)이 수군을 거느리고 동래(東萊)로부터 바다를 건너 비사성(卑沙城)을 습격하였는데,

성은 4면이 깎은 듯하고 다만 서문만이 오를 수 있었다.

정명진(程名振)이 군사를 이끌고 밤에 도착하였다. 부총관 왕대도(王大度)가 먼저 [성으로] 올라갔다.

5월에 성이 함락되어 남녀 8천 명이 죽었다.

 

이세적이 나아와 요동성 밑에 이르고, 황제가 요택(遼澤)에 이르렀으나, 진흙이 200여 리나 되어 사람과 말이 통과할 수 없었다.

장작대장(將作大匠) 염입덕(閻立德)이 흙을 덮어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군대가 머무르지 않고 요택의 동쪽으로 건너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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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오늘서부터 본격적인 고구려 침략의 모습이 보입니다.

 

2) 먼저 이세적은 유성(柳城)을 출발하여

마치 회원진(懷遠鎭)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고는 통정(通定)으로부터 요수를 건너 현도에 이르릅니다.

 

3) 부대총관 도종(道宗)은 신성으로 침입하고,

 

4) 영주도독 장검(張儉)은 선봉이 되어 건안성(建安城)으로 침입하였으나, 현도와 신성, 건안성은 빼앗지 못하고,

 

5) 보장왕 4년(645년) 4월,

대총관 이세적과 부총관 도종이 함께 군사를 돌려 개모성으로 몰려가 개모성을 빼앗고, 개주로 삼습니다.

 

6) 한편 수군을 이끄는 장량은 동래(東萊)로부터 바다를 건너 비사성(卑沙城)을 습격합니다.

보장왕 4년(645년) 5월 성이 함락됩니다.

 

7) 이세적은 요동성으로 나아가고,

이세민은 요택(遼澤)에 이르나 진흙이 200여 리나 되어 통과할 수 없어서 고생합니다.

 

8) 무경칠서(武經七書)라고 해서 무관(武官)으로 나아갈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병서(兵書) 중에서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 라는 병서가 있습니다.

 

이 책은 당태종과 이정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는 병서인데,

고구려 침략에 대해 묻고 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래전에 읽어서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 대강의 내용을 말 한다면)

 

그 내용 중에서 당태종이 요택에 이르러서 그 규모에 놀라며,

고구려 사람(연개소문?)이 병법을 잘 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고구려 사람들(연개소문?)이 요택에 왜 군사를 매복하지 않는가? 하고 비웃고 있습니다.

요택에서 자기들이 꼼짝못하고 있는데 고구려 군사들이 자기들을 쳤다면

자기들은 꼼짝없이 떼죽음을 당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고구려 사람들(연개소문)이 병법을

잘 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태종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자기의 생각이며, 중국식 전법(戰法)이지 우리민족의 전법(戰法)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인구가 적어서 싸우는데 있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조상들은 전쟁을 하는데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했는가?

 

그것은 우리조상들이 살아왔던, 따라서 우리조상들이 제일 잘하는,

산악전을 선택한 것이고 산악전에 전쟁의 역랑을 집중하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산악전(山岳戰)으로, 달리말해서 산성전(山城戰)으로 당태종의 침입도 막아내어

당태종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9) 따라서 당태종도 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는 구절의 참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자기는 잘 알지만 남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고구려는 당태종과의 싸움에서 이겼고, 당태종은 패배 합니다.

 

오늘의 기사도 구당서와 신당서를 재단한 것인데 오늘은 그 내용을 생략하겠습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본인의 블로그에 있는  구당서와 신당서를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