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9)

상 상 2012. 3. 14. 18:38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⑥>

 

 

 

4 년 (AD 645) : 봄 정월에 이세적의 군대가...

[번역문]

4년(645) 봄 정월에 이세적의 군대가 유주(幽州)에 이르렀다.

 

3월에 [당나라] 황제가 정주(定州)에 이르러 시중하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요동은 본래 중국의 땅인데 수나라가 네 번이나 출병하였으나 얻을 수 없었다.

짐이 지금 동쪽으로 정벌하는 것은, 중국을 위해서는 자제(子弟)들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것이고, 고구려를 위해서는 임금의 치욕을 씻어주려고 하는 것뿐이다.

또 사방이 대체로 평정되었는데 오직 이곳만 평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늙지 않았을 때 사대부들의 남은 힘으로써 이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황제가 정주를 출발할 때 친히 활과 화살을 차고, 자기 손으로 안장 뒤에 비옷을 매었다.

 

이세적의 군대가 유성(柳城)을 출발하여 형세를 과시하며 마치 회원진(懷遠鎭)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고는,

군사를 몰래 북쪽 양쪽에 담이 있는 길로 몰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길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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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여기를 보면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는 진짜 목적이 나옵니다.

 

당태종 왈 “사방이 대체로 평정되었는데 오직 이곳만 평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직 늙지 않았을 때 사대부들의 남은 힘으로써 이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고(삼국사기),

 

신당서 동이열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정관(貞觀)] 19년(A.D.645; 고구려(高句麗) 보장왕(藏藏王) 4년) 2월에 태종(太宗)이 낙양(洛陽)에서 정주(定州)로 옮겨 가서,

주위의 신하에게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다 평정되었으나, 오직 요동(遼東)만 복종하지 않고 있다.

그의 후사(後嗣)가 사마(士馬)의 강성(强盛)함을 믿고 신하들과 모의하여 싸움을 유도하므로, 전쟁은 바야흐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짐(朕)이 친히 그를 쟁취하여 후세의 걱정을 없애려 한다.” 고 하였다.’

 

 

2) 그러니까 고구려를 침략하는 진짜 목적은

천하가 다 당나라 손에 들어갔으나 고구려만 당나라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고구려가 사마(士馬-문무,文武 즉, 국력)가 강성하여

그를 바탕으로 오히려 당나라에 싸움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고구려만이 당에 대등한 힘을 가진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싸워서 당나라의 걱정을 없애겠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고구려는 당에 고개 숙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고, 문무(사마,士馬)가 강성(强盛)한 나라임을 알 수 있으며,

왕과 신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있는 단단한 나라로써,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당나라에 싸움을 거는 강국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따라서 당태종이 고구려 임금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했다는 삼국사기 보장왕 2년(643년) 윤 6월 기록은 거짓임이 드러났고,

 

구당서 동이열전‘[정관(貞觀)] 17년(A.D.643; 고구려(高句麗) 보장왕(寶藏王) 2년)에 그 사왕(嗣王) 장(藏)을 책봉(册封)하여

요동군왕(遼東郡王) 고려왕(高[구,句]麗王)으로 삼았다.’는 기록도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무슨 복종하지도 않은 나라, 국력이 강성하여 오히려 싸움을 거는 나라, 고구려 임금을 누구 마음대로 왕에 책봉한다는 말입니까?

이는 제멋대로 자기 혼자 말하고, 쓰고 한 작문(作文)이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차례 말한 바와 같이,

여태까지 중국사서에 나오는 고구려 임금을 무엇에 삼았다든지, 무엇에 봉했다든지,

무슨 벼슬을 주었다든지 심지어 책봉했다는 기록은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당태종이 또 말하기를 “요동은 본래 중국 땅”이라고 말한 것은 도둑놈 강도의 어법입니다.

요동은 본래 고조선의 땅이고, 중국은 그 땅을 빼앗은 자입니다.

따라서, 빼앗은 것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강도나 도둑놈의 어법이겠습니다.

 

 

당태종의 어법 대로라면 우리도 중국을 빼앗으면 중국도 우리 땅입니다.

역사란 모르는 것이어서 우리가 중국을 빼앗을 날이 있을 것이며

우리도 중국을 빼앗으면 중국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 됩니다

 

 

 

※ 오늘 기사와 관련된 신당서 동이열전.

 

○ [정관(貞觀)] 19년(A.D.645; 高句麗 藏藏王 4) 2월에 태종(太宗)이 낙양(洛陽)에서 정주(定州)로 옮겨 가서,[註083]

주위의 신하에게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다 평정되었으나, 오직 요동(遼東)만 복종하지 않고 있다.

그의 후사(後嗣)가 사마(士馬)의 강성(强盛)함을 믿고 신하들과 모의하여 싸움을 유도하므로, 전쟁은 바야흐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짐(朕)이 친히 그를 쟁취하여 후세의 걱정을 없애려 한다.” 고 하였다.

 

태종(太宗)이 성문(城門)에 앉아서 지나가는 군사를 일일이 위로하여 주고, 질병이 있으면 친히 살펴 보아서

주(州)· 현(縣)에 명하여 치료하게 하니, 군사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장손무기(長孫无忌)가 상주(上奏)하여,

“천하(天下)의 부어(符魚)[註084]가 다 따르고 있으나, 궁관(宮官)은 열사람 뿐이니, 세상 사람들이 제위(帝位)를 경시(輕視)하겠습니다.”

라고 아뢰자, 태종(太宗)은 “요하(遼河)를 건너는 십만의 군사가 모두 집안을 버리고 떠나 왔다. 짐(朕)은 열사람이 따르는 것만도 오히려

많다고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공(公)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하고, 몸소 고방(櫜房)을 메고 두개의 전통(箭筒)을 안장에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