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③ >
군신들이 모두 황제에게 가지 말 것을 권하였으나 황제가 대답하였다.
“나는 알고 있다. 근본을 버리고 말단으로 달리는 일, 높은 것을 버리고 낮은 것을 취하는 일,
가까운 것을 두고 먼 것을 택하는 일, 이 세 가지는 상서롭지 못한 것이니, 고구려를 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또 대신들을 살륙하고는 만족해 하므로,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목을 늘이고 구원해 주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의논하는 사람들이 살피지 못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북쪽으로 영주(營州)로 곡식을 나르고, 동쪽으로 고대인성(古大人城)에 곡식을 저장하였다.
11월에 황제가 낙양에 이르렀다.
전 의주(宜州)자사 정천숙(鄭天璹)이 이미 벼슬을 그만 두었으나,
황제는 그가 일찍이 수나라 양제를 따라 고구려를 정벌하였으므로 행재소로 불러서 물으니,
그가 “요동도는 멀어서 군량을 옮기는 것이 어렵고, 동이(東夷)는 성을 잘 지키므로 갑자기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황제는 “지금은 수나라 때에 비할 것이 아니다. 공은 다만 따르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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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보장왕 3년(644년) 11월 당태종이 드디어 고구려 침략길에 나서면서 별 잘난 척을 다합니다. 결국에는 패해서 개 쫒기듯 쫒길 놈이
뭔 그리 폼을 잡는지...
2) 군신들이 모두 황제에게 가지 말 것을 권하고, 고구려에 침입하는 것이 좋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가려고 합니다.
3) 가는 길에 낙양에 들러 경험자의 충고도 무시하고 끝끝내 고집을 부리고 고구려 침입의 길에 나섭니다.
4) 당태종과 정천숙의 대담에서 ‘동이’란 우리민족 고구려를 두고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
5) 오늘의 기사는 신당서 동이열전을 옮겨 쓴 것입니다.
오늘 내용에 해당하는 신당서 동이열전을 보면...
○ 군신(君臣)들이 모두 황제(皇帝)는 떠나지 말기를 권하자, 태종(太宗)은,
“나도 [그 이유를] 안다.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취하며,높은 곳을 버리고 낮은 곳을 취하며, 가까운 곳을 두고 먼 곳으로 가는 이 세 가지는 좋지 못한 일로서 고려(高[구,句]麗)를 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개소문(蓋蘇文)이 군주(君主)를 시해하고, 또 대신(大臣)을 죽여 [제 야심을] 충족시키므로,
온 나라 사람들이 구원해 주기를 목을 늘여 기다리고 있다. 의자(議者)들은 아직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군량을 북으로는 영주(營州)에 수송하여 쌓고, 동으로는 고대인성(古大人城)[註078]에 [수송하여] 쌓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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