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8대 보장왕 (7)

상 상 2012. 3. 12. 18:45

<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④ >

 

형부상서 장량(張亮)을 평양도 행군대총관(行軍大摠管)으로 삼아서,

강회(江淮)와 영협(嶺硤)의 군사 4만 명과 장안과 낙양에서 모집한 군사 3천 명과

전함 500척을 거느리고 내주(萊州)로부터 바다를 건너 평양으로 오게 하였다.

 

또 태자 첨사좌위솔(詹事左衛率) 이세적(李世勣)을 요동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보병과 기병 6만 명과 난주(蘭州)· 하주(河州) 2주의 항복한 오랑캐들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가게 하여,

양군이 합세하여 유주(幽州)에서 다 모이게 하였다.

 

행군총관(行軍摠管) 강행본(姜行本)과 소감(少監) 구행엄(丘行淹)을 보내

먼저 중공(衆工)을 독려하여 안라산(安羅山)에서 사다리와 충차(衝車)를 만들게 하였다.

이때 응모한 원근의 용사들과 성을 공격하는 기계를 바친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므로,

황제가 모든 것을 친히 가감하여 편이한 것을 취하였다. 또 친필 조서로써 천하에 알렸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학대하니 그 실정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느냐?

이제 유주와 계주(薊州)를 순행하고 요동과 갈석으로 가서 그 죄를 물으려고 하니,

지나는 곳의 군영과 숙사에서 노력과 경비가 들지 않도록 하라.”

--------------------------------------------------------------------

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오늘의 기사도 보장왕 3년(644년) 11월 낙양에서 당태종이 한 일입니다.

 

2) 당태종은 수양제 113만 대군의 패전 원인을 분석하고, 그 대책으로 처음부터 정예군만을 편성,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침략에 나섭니다.

 

3) 군을 셋으로 편성하여,

첫째, 장량으로 하여금 수군 4만 여명을 이끌고 직접 바다를 건너 평양을 침략하게 하고,

둘째, 이세적으로 하여금 선발대로 육군 6만과 난주(蘭州)·하주(河州) 2주의 항복한 오랑캐들을 거느리고 요동으로 가게 하였으며,

셋째, 당태종 자신이 직접 6군()을 이끌고 이세적의 선발대 뒤를 따라 가기로 하였습니다.(본문에는 안 나오나 구당서에 나옴)

 

4) 당태종의 친필조서를 보면

“요동과 갈석으로 가서 그 죄를 물으려고 하니” 라는 구절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요동과 갈석은 고구려 땅임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5) 오늘 기사와 관련된 구당서 동이열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관(貞觀)] 19년(A.D.645; 高句麗 寶藏王 4)에 형부상서(刑部尙書) 장량(張亮)[註075]을 평양도행군대총관(平壤道行軍大總管)으로

삼아 장군(將軍) 상하(常何) 등과 강(江)· 회(淮)· 영(嶺)· 협(硤)의 강한 군사 4만명· 전선(戰船) 5백척을 이끌고

내주(萊州)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平壤)으로 향하게 하였다.

 

또 특진(特進)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註076]을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總管)으로 삼고,

예부상서(禮部尙書)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註077]을 부총관(副總管)으로 삼아서 장군(將軍) 장사귀(張士貴) 등과

보병(步兵)· 기병(騎兵) 6만을 이끌고 요동(遼東)으로 나아가게 했다.[註078]

양군(兩軍)이 합세하도록 한 다음, 태종(太宗)은 친히 6군(軍)[註079]을 거느리고 가서 [전군을] 합류하기로 했다.[註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