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고구려 당 전쟁, 당태종의 침입 24) 안시성 싸움 (끝부분) >
도종이 맨발로 깃발 아래에 나아가 죄를 청하니 황제가 말하였다.
“너의 죄는 마땅히 죽을 만하나, 다만 짐은 한(漢)나라 무제가 왕회(王恢)를 죽인 것은,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맹명(孟明)을 쓴 것만 같지 못하다고 여기며,
또 개모성과 요동성을 깨뜨린 공이 있으므로 특별히 너를 용서할 뿐이다.”
황제는 요동이 일찍 추워져서 풀이 마르고 물이 얼어 군사와 말이 오래 머물기 어렵고,
또 양식이 다 떨어져가므로 군사를 돌릴 것을 명령하였다.
먼저 요주· 개주 2주의 호구를 뽑아 요수를 건너게 하고 안시성 밑에서 군대의 위엄을 보이고 돌아갔다.
성 안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으나 성주가 성에 올라 절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황제는 그가 굳게 지킨 것을 가상하게 여겨 비단 100필을 주면서 임금 섬기는 것을 격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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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흙산(土山)을 둘러싼 전투를 보면
당태종군은 60일 동안 밤낮으로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죽기 살기로 거대한 흙산을 만들었으나,
하루아침에 고구려 군에게 빼앗기니, 그동안 당태종 군은 지칠대로 지쳤고,
게다가 허무하게 빼앗겼으므로 당태종 군의 사기는 그 순간 무너져서,
흙산을 탈환하고자 전군을 동원하여 사흘이나 공격해봐도
이미 꺾인 군의 풀잎같은 사기로는 도저히 탈환되지않고 있습니다.
2) 그런데다가 시간은 흘러 요동(遼東)의 창고에 군량(軍糧)이 거의 바닥이 나고,
사졸(士卒)들이 추위와 동상에 시달리자, 이에 후퇴(班師:반사)를 명합니다.
3) 다시말해서 패전과 군량, 추위 때문에 전군이 몰살 당하게 되자
당태종은 도망쳐 버립니다.
4) 당태종이 중국을 휩쓸고 주변 이민족을 전부 굴복시킨 똑똑하고 현명한 명장이요,
명군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제집에서 큰소리 친 것일뿐,
우리 선조 고구려에게는 힘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졸전을 펼친 끝에 도망을 가버리는 것입니다.
5) 고구려에 침입할 때 중국에서 최고의 명장과 정예중의 정예병만 모조리 골라서 쳐들어 왔고,
그 때문에 침략해 올때는 온갖 큰소리는 다 치고, 온갖 거만과 개소리, 흰소리에
이미 이긴 것처럼 거드름을 피우면서 왔지만 결과는 초라하게 도망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큰소리 칠때는 언제이고 꽁무니를 빼서 도망치는 꼴하고는...ㅉㅉㅉ
6) 그러므로 산을 뽑고 바다를 메울 수 있다고 큰 소리친 그 힘센 수양제도
힘으로 우리의 선조, 고구려를 이길 수 없었고,
중국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똑똑하다는 당태종도
머리로 우리의 선조 고구려를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중국 사람들은 힘으로든 머리로든 우리민족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7) 따라서 우리민족은 그 전부터 있었던 ‘지지 않는다’, ‘꿇릴 것 없다’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신이
이때부터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민족은 어딜 가나, 어디에 있으나‘지지 않겠다’또는‘꿇리지 않겠다’는
정신이 가슴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역사적 근원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8) 우리민족은 누구에게도 안 진다,
또는 우리민족에게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주변 민족에게 알려져
이후 어느 민족도 우리민족 국가를 함부로 쳐들어 오거나,
우리민족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9) 여기서 자세히 보면, 이긴 것은 다 당태종이 했다고 되어있고,
진 것은 다 당태종의 부하 장수가 했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태종을 보호하려고 꾸며 쓴 것이 명백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당태종을 역사상 둘도 없는 명군으로 칭송하기 때문에
좋은 것은 다 당태종이 한 것으로, 나쁜 것은 다 부하 장수가 한 것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 여기서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않나오지만
야사에는 양만춘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 안시성 성주가 당태종이 도망가니 절하며 작별인사를 했다는 기록도 꾸며 쓴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죽기살기 칼부림한 마당에 무슨 도망가는 적장을 향하여 절을 하나요?
이는 후세 중국 사람들이 당태종을 미화하기 위하여 소설을 쓴 것이 틀림없습니다.
※ 오늘 기사와 관련있는 구당서 동이열전
○ 태종(太宗)은 요동(遼東)의 창고에 군량(軍糧)이 거의 바닥이 나고, 사졸(士卒)들이 추위와 동상에 시달리자,
이에 반사(班師)를 명하였다.
그 성(城)을 지날 때 성(城)안에서는 일제히 소리를 죽이고 깃발을 눕혔으며,
성주(城主)[註108]는 성(城)위에 올라와 손을 모아 절을 하며 하직하였다.
태종(太宗)은 그들이 [성을] 굳게 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백필을 내려 주고, 임금을 섬기는 절의를 격려하였다.
※ 오늘 기사와 관련있는 신당서 동이열전
○ 반사(班師)를 명하여 함락시킨 요주(遼州)· 개주(蓋州)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 왔다.
군대가 성 밑을 지나자 성중(城中)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깃대를 눕혔으며,
성주(城主)[註101]는 성 위에 올라가 재배(再拜)하였다.
태종(太宗)은 그들이 [성(城)을] 잘 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백필을 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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