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79,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24, 9. 절도사의 시대-2)

상 상 2018. 1. 5. 19:09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379,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224, 9. 절도사의 시대-2)

 

차례

 

. 관련 사료

1. 구당서 토번전()

2. 구당서 토번전()

3. 신당서 토번전

4. 구당서 돌궐전

5. 신당서 돌궐전

6. 구당서 측천본기

7. 신당서 측천본기

8. 구당서 거란전

9. 신당서 거란전

10. 구당서 발해전

11. 신당서 발해전

12. 구당서 숙종본기

13. 구당서 회홀전

14. 신당서 회골전

15. 구당서 남조전

16. 신당서 남조전

17. 구당서 신라전

18. 신당서 신라전

19. 삼국사기 신라본기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1. 이진충의 난 이전

2. 이진충의 난

3. 돌궐족 묵철의 침공

4. 안사의 난

5. 토번의 침공

6. 토번의 침공 이후

7. 민란의 발생과 남조의 침공

8. 황소의 난

9. 절도사의 시대

10. 당의 멸망

 

. 통일신라와 당

1. 통일신라 이후의 당나라 약사

2. 신구당서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3.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한 통일신라와 당

4. 사료를 통합해서 본 통일신라와 당의 관계

 

. 나당전쟁 이후의 당나라

9. 절도사의 시대

1) 연표

 

1) 연표-2

내용(출처: 자치통감- 요약)

885

당 희종. 성도 출발(885123)

 

당 희종이 성도(成都)를 출발하였다.(123)

 

형남감군 주경매가 모집한 충용군(忠勇軍)이 포악하고 횡포하여 형남절도사 진유가 걱정하였다.

정소업이 형남에 진수하면서 대장 신도종을 파견하여 장안에서 황소를 쳤는데 군사들이 돌아오자

진유는 신도종에게 주경매를 제거하게 하였다. 충용의 장수 정군종이 소식을 듣고 낭주로 달아났는데 신도종이 그를 추격하여 100여명을 죽였고 이로부터 신도종은 군정을 오로지 하였다.(1)

 

낭주자사 뇌만이 형남을 노략질 하니 형남절도사 진유가 뇌물을 주어 퇴각시켰다.

 

회남의 장수인 장괴와 한사덕이 고병을 배반하고 복주와 악주(岳州)를 점거하고 스스로 자사라고 하니, 형남절도사 진유가 장괴와 한사덕에게 직위를 주고, 만족인 랑주()자사 뇌만을 치게 하였다.(1)

한사덕은 협주(峽州)로 올라가 대대적 약탈하고 악주(岳州)로 돌아왔으며, 장괴는 군사를 돌려 형남절도사 진유를 쫓아내고 그를 대신하였다. 이로써 형남의 옛 장수들은 이멸하여 거의 다 없어졌다.(1)

 

장괴가 감군 주경매를 죽이고 재물 탈취하고 장괴의 아장 곽우는 장괴가 죽이려하자, 1천 군()으로 도주해(1)

귀주(歸州)를 습격하여 점거하고 스스로 귀주자사라고 하였다.(24)

남강(南康)의 도적 노광조는 건주를 함락시키고 스스로 자사라고 하고 마을 사람 담전파를 모주로 삼았다.

진종권은 광주(光州)자사 왕서에게 조부를 바치라고 하였는데 왕서가 바치지 못하자 진종권이 군사를 동원하여 그를 공격하였다.

 

 

왕서의 복건 이주(8852)

 

왕서는 두려워 백성들을 몰아 강을 건너 강주, 홍주, 건주를 약탈하였는데 이달에 정주와 장주를 함락시켰지만 모두 이를 지킬 수가 없었다.

왕서의 복건 이주


진종권이 영주, 박주를 약탈하니 주전충이 그를 박주 초이(焦夷)에서 패배시켰다.

 

당 희종, 봉상 도착(885210

 

당 희종이 봉상에 도착하였다.(210)


  

당 희종, 장안 환궁(885312)

  

당 희종이 장안으로 환궁하였다.(312)

44개월 만임. 가시밭이 온 성에 가득하고, 여우와 토끼가 종횡으로 다녔다



당 조정의 호령이 시행되는 곳(885314)


천하를 사면하고 연호를 고쳤다(314) 이때 당 조정의 호령이 시행되는 곳은 하서(河西), 산서, 산남(山南), 검남(劍南), 영남(嶺南)에 있는 수십 주() 뿐이었다.



진종권이 황제를 칭함(8853)


진종권이 황제를 칭하면서 백관을 두니 무녕(감화)절도사 시부에게 토벌케 하였다(3)


노룡절도사와 성덕절도사의 의무절도사 욍처존 공격(8853)


노룡절도사 이가거, 성덕절도사 왕용 등은 이극용이 강성한 것을 싫어하였지만 의무절도사 왕처존은 이극용과 가까이 지내 조카 왕업에게 이극용의 딸과 혼인시켰다. 또 하북의 여러 진 가운데 의무절도만이 당 조정에 속해 이가거 등은 함께 왕처존을 멸망시켜 그 땅을 나누기로 하였으며, 운중절도사 혁련탁에게 이극용의 배후를 공격하게 하였다. 노룡절도사 이가거는 그의 장수 이전충을 파견하여 6만을 거느리고, 이주(易州)를 공격하게 하고. 성덕절도사 왕용은 장군을 파견하여 무극(無極)을 공격하게 하였다.

 

왕처존이 이극용에게 급한 상황을 알리니 이극용은 그의 장수 강군립을 파견하여 그를 구원하게 하였다.(3)  

진종권이 그의 동생 진종인을 파견하여 형남을 노략질 하게 하였다(3)

 


당 조정의 재정부족(885년 윤3)


당시 당조정의 남아, 북사의 관원은 모두 1만여명인데 이때에 번진에서 각기 조세를 장악하여. 하남, 하북, ,(江淮)에서는 다시 물건을 올리는 일이 없었고, 경기, (), (), 봉상 등 몇 주()의 조세만 거두니, 재정부족으로 상급을 못받은 사졸들이 원망하는 말을 하였다.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장악한 소금 전매권, 전령자 탈취(885년 윤3)


안읍(安邑)과 해현() 두 연못의 소금은 염철사에게 예속시켜 전매하게 하였는데 희종이 즉위한 이래로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장악하고, 해마다 3천수레 올리니 환관 전령자가 옛날처럼 [하중]의 소금을 다시 염철사에 예속시키게 하였다.(3)


전령자가 스스로 양지각염사 겸해, 그 이익으로 군대를 도왔다.(4)

이에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반발하자(4)

 

전령자는 하중절도사 왕중영을 태녕절도사로 옮기게 하고 태녕절도사 제극양을 의무절도사로 옮기고, 의무절도사 왕치존을 하중절도사로 옮기고 이극용에게 왕처존을 도우라고 하였다.(5)


노룡의 비장 유인공이 이주(易州)에서 승리하여 점령하니 이극용이 무극(無極)을 구원하여 성덕의 군사를 패배시키니 성덕군은 신성(新城)으로 후퇴하였으나 이극용이 다시 진격하여 이를 크게 깨뜨리고 구문까지 쫓아가 1만여 급을 참수하였다.(5)


노룡의 군사들은 이주를 얻고나자 교만하고 게을러졌는데 의무절도사 왕처존이 양가죽 뒤집어쓰고 속여 대파하고, 이주(易州)를 탈환하니, 이전충이 달아났다.(5)

 

이전충은 죄 받을까 두려워, 유주를 습격하니(5) 노룡절도사 이가거는 분신자결하여 이전충이 스스로 노룡유후라고 하였다.(6)



진종권 낙양 함락(8856)


동도유수 이한지는 진종권의 장수 손유와 몇달동안 대치하다가 식량부족으로 서쪽 민지(澠池)로 후퇴하니 진종권이 동도(낙양)을 함락시켰다.(6)

이전충을 노룡유후로 삼았다.(7)

 

창주(의창)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절도사 양전매 축출하고, 아장 노언위를 의창유후로 삼으니 양전매는 유주로 달아났다. 조성을 의창절도사로 삼고 노언위를 덕주(德州)자사로 삼았다.(7)

 

 

진종권, 낙양을 떠남(8857)


진종권의 무리 손유가 1달여 동안 낙양의 궁실, 관시, 민가를 불태우고 대대적으로 약탈하고 떠났다. 동도유수 이한지가 다시 낙양(洛陽)으로 돌아와 보루를 쌓고 주둔하였다

 

 

왕중영과 환관 전령자의 분쟁(8857)


전령자 때문에 태녕절도로 가게된 왕중영이 태녕절도로 가지않고 전령자의 죄를 논하니 전령자는 빈녕절도사 주매와 봉상절도사 이창부와 관계를 맺고 대항하였다. 의무절도사 왕처존이 왕중영이 죄가 없다고 말을 올리자 왕처존을 진주에 가게 하여(7)

 

왕처존이 진주에 도착하였으나 자사 기군무가 성을 닫고 받아들이지 않아 돌아갔다.(8)

 

명주(洺州)자사 마상이 절도사 맹방립을 위협했다가, 무리가 무너져 위주으로 도주했다가 피살되었다(8)

진종권이 이웃 도의 20여개 주()를 함락시켰는데, 진주(陳州)자사 조주를 굴복시킬수 없었다.

이에 당 조정은 조주를 채주(蔡州)절도사로 삼았다. 조주는 주전충이 원조한 것을 은덕으로 생각 주전충과 혼사를 맺어 연대하였다.


진종권에 패주한 전 광주(光州)자사 왕서는 남안(南安)에서 부하 왕조의 습격에 잡혀 조리돌려졌다.

군사들이 왕조를 장군으로 삼았다. 광주(光州)로 다시 돌아가다가, 사현()에 도착하였는데 천주(泉州) 사람 장연로 등이 자사가 포악하니 왕조에게 남아서 주장이 되어 달라고 하니 왕조는 천주를 포위하였다.(8)

 

진경선을 삼천급협내제주도지휘, 제치등사로 삼았다(927)

채군(蔡軍:진종권의 군대)이 형남을 포위하니 마보사 조광이 전 절도사였던 진유를 받들어 나가려고 모의하다가 형남유후 장괴가 이를 발견하여 조광과 진유를 죽였다.(9)

진종권이 주전충을 팔각(八角)에서 패배시켰다.(102)

 

 

왕중영이 이극용에게 구원 요청(8859)


하중절도사 왕중영이 이극용에게 구원을 요청하니 이극용은 변주를 공격할 것을 논의하고 주전충과 연대한 빈녕절도사 주매와 봉상절도사 이창부를 죽이고 주전충을 죽이겠다고 하였다. 이에 당 의종은 화해를 주선하려 노력하였다.

전령자, 하중절도사 왕중영 토벌(88510)

빈녕절도사 주매는 장안(長安)에 사람을 보내 소란 일으키며 이극용의 짓이라고 말하였다.(10)

 

환관 전령자가 빈녕절도사 주매와 봉상절도사 이청부를 파견하여 그 군()과 신책, , , , 하 각각 3만을 거느리고 사원에 주둔하여 왕중영을 토벌하니 왕중영은 이를 이극용에게 알렸고 이극용이 군사를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10)



전령자 측의 토벌군과 왕중영의 싸움, 이극용 도착(88511)


왕중영은 동주(同州)를 공격하여 토벌군과 1달 넘게 대치하였는데 이극용이 도착하여 함께 사원(沙苑)에 성을 쌓고 전령자와 주매, 이창부를 주살해 달라고 청하니 당 희종은 이들을 화해하게 하였지만 이극용은 듣지 않았다.(11)



전령자 측의 토벌군 대패(8851223)


두 군대가 모여 싸웠는데 주매와 이창부가 대패하였고 각기 본진으로 돌아가며 지나는 곳 약탈하였다.(1223) : 사원(沙苑) 전투



전령자, 당 희종 데리고 장안 탈출(8851225)


이극용이 장안(長安)을 압박하니, 환관 전령자는 당 희종을 데리고 봉상으로 달아났다.(1225)

당 희종 환궁한지 9개월 만에 다시 몽진

애초에 황소가 장안(長安)의 궁실을 다 불지르고 갔는데, 여러 도의 군사들이 들어와 약탈, 방화하고 그후 지경조윤 왕휘가 여러해 동안 보수하여 겨우 1~2개 완성하였으나. 이에 이르러 다시 방화, 약탈되어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하중군을 호국()이라고 하였다.(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