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7대 영류왕 (5)

상 상 2012. 3. 4. 18:28

21 년 (AD 638) : 겨울 10월에 신라의 북쪽 변경의

[번역문]

21년(638) 겨울 10월에 신라의 북쪽 변경의 칠중성(七重城)을 침략하였다.

신라의 장군 알천(閼川)이 막으므로 칠중성 밖에서 싸웠는데 우리 군사가 졌다.

 

23 년 (AD 640) : 봄 2월에 세자 환권(桓權)을 당나라에 보내

[번역문]

23년(640) 봄 2월에 세자 환권(桓權)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태종이 위로하고 선물을 특별히 후하게 주었다.

왕은 자제를 당나라에 보내 국학(國學)에 입학할 것을 청하였다.

가을 9월에 해가 빛이 없다가 3일이 지난 뒤 다시 밝아졌다.

 

24 년 (AD 641) : 황제는 우리 태자가 입조하였으므로

[번역문]

24년(641)에 황제는 우리 태자가 입조하였으므로, 직방낭중(職方郎中) 진대덕(陳大德)을 보내 노고에 보답하였다.

[진]대덕이 국경으로 들어와서 이르는 성읍마다 관리들에게 비단을 후하게 주면서

“내가 산수를 좋아하는데 이곳에 경치가 뛰어난 곳이 있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관리들은 기꺼이 그를 인도하여 놀러 돌아다니며 가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 세세한 곳을 다 알게 되었다.

 

중국사람으로 수나라 말년에 군대에 나갔다가 숨어서 남게 된 사람들을 보면,

친척들의 생사를 말해주어 사람들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가는 곳마다 남녀가 좌우에서 그를 보았으며

왕은 군대의 호위를 성대하게 하여 사신을 맞이하였다.

 

[진]대덕이 사신으로 온 것을 기회로 나라의 허실을 엿보았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진]대덕이 돌아가 아뢰니 황제가 기뻐하였다.

 

[진]대덕이 황제에게 “그 나라가 고창(高昌)이 망한 것을 듣고 크게 두려워하여,

객사에서 접대하는 것이 평상시보다 더 은근합니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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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사신을 빙자한 진대덕이 간첩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양국은 아직도 서로 다투는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오늘의 기사는 외교관이란 공식적인 간첩이라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사실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3) 또한 중국사람들은 아무리 웃는 얼굴을 해도 속으로는 음흉한 흉계를 늘 생각하고 있음을

다시한번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