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7대 영류왕 (3)

상 상 2012. 3. 2. 18:33

6 년 (AD 623) : 겨울 12월에 사신을

[번역문]

6년(623) 겨울 12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7 년 (AD 624) : 봄 2월에 왕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책력을

[번역문]

7년(624) 봄 2월에 왕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책력을 반포해 줄 것을 청하였다.

[황제가] 형부상서 심숙안(沈叔安)을 보내 왕을 상주국(上柱國) 요동군공 고구려국왕으로 책봉하고,

도사(道士)에게 명하여 천존상(天尊像) 및 도법(道法)을 가지고 와서 노자(老子)를 강의하게 하였다.

왕과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들었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8 년 (AD 625) : 왕은 사람을 당나라에 보내 불교와

[번역문]

8년(625)에 왕은 사람을 당나라에 보내 불교와 도교의 교법을 배워오기를 구하니 황제가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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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또다시 당나라에서 고구려 임금을 고구려 왕에 책봉했다고 쓰고 있는데

구당서 동이열전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덕무[武德] 7년(A.D.624; 고구려高句麗 영류왕榮留王 7)에 전형부상서(前刑部尙書) 심숙안(沈叔安)을 보내어

건무(建武-영류왕)를 상주국(上柱國) 요동군왕(遼東郡王) 고려왕(高麗王)에 책봉하고, 아울러 천종상(天尊像) 및

도사(道士)를 대동하고 가서노자『老子』를 강의하도록 하였다.

왕(王) 및 도가(道家)·속인(俗人) 등 보고 듣는 자가 수천명이나 되었다.

 

고조(高祖)는 일찍이 시신(侍臣-측근 신하)에게,

“명분과 실제의 사이에는 모름지기 이치가 서로 부응하여야 되는 법이다.

고[구]려(高[句]麗)가 수(隋)에 칭신(稱臣)하였으나 마침내 양제(爆帝)에게 거역하였으니, 그것이 무슨 신하이겠는가 !

 

짐(朕)은 만물(萬物) 중에 공경받으나 교귀(驕貴)를 피우고 싶지는 않고,

다만 살고 있는 영토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편안히 살 수 있도록 함께 힘쓸 뿐이지

무엇 때문에 반드시 칭신(稱臣)하도록 하여 스스로 존대(尊大)함을 자처하여야 되겠는가.

즉시 짐(朕)의 이 심정을 조술(詔述-조서쓰기)하라.』

 

이 말은 당고조(이연)가 직접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당고조(이연)은 고구려에 대하여는 칭신하도록 할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서에 고구려 임금을 고구려왕에 책봉하였다고 버젓이 써 놓았으니

이는 후세 어떤 작자가 가필(꾸며 써 넣은 말) 한 것이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