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23) 끝부분 고구려, 수 4차 대전(2)

상 상 2012. 2. 28. 18:39

[번역문]

8월에 황제가 회원진으로부터 군대를 돌이켰다.

겨울 10월에 황제가 서경(西京)으로 돌아가서 우리 사신과 곡사정을 데리고 대묘(大廟)에 고하고, 이내 왕을 불러 입조하게 하였으나,

왕은 끝내 따르지 않았다.

 

[황제가] 장수에게 명하여 무장을 엄하게 하고 다시 후일의 거사를 꾀하였으나 마침내 실행하지 못하였다.

 

29 년 (AD 618) : 9월에 왕이 죽어 왕호를 영양왕이라고 하였다

[번역문]

 

29년(618) 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왕호를 영양왕이라고 하였다.

 

[원문]

八月 帝自懷遠鎭班師 冬十月 帝還西京 以我使者及斛斯政告大廟

仍徵王入朝 王竟不從 勑將帥嚴裝 更圖後擧 竟不果行

二十九年 秋九月 王薨 號曰嬰陽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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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킨 613년 이후 수나라 곳곳에서는 반란이 일어 나라가 어지러운데도 불구하고

614년 수양제는 또다시 고구려에 침입합니다.

 

그러나 전편에서 보았다시피 비사성에 침입하였으나 거기서도 이기지 못하고,고구려에게 곡사정을 인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영양왕은 수양제의 체면을 생각해서 곡사정을 돌려 보냅니다.

곡사정을 돌려주자 이것을 핑계로 군사를 돌려 수나라 서경으로 돌아갑니다.

 

이때는 이미 중국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므로 이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한

수양제는 618년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살해당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양제는 자살하게 해달라고 애걸 했으나 우문화급은 그것도 용인하지 않고 양제의 목을 졸라 죽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우문술은 정예군 30만으로 고구려를 침입했다가 살수에서 몰살 당할 때군사를 이끌고 왔던 바로 그 우문술입니다.

 

2) 따라서 수나라는 우문씨에게 나라를 선양받아 나라를 세우고 우문씨에게 목졸려 죽어 나라가 멸망하는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3) 이러한 수양제의 죽음을 보면서 영양왕도 세상을 떠납니다.

 

4) 영양왕의 업적을 보면,

그 당시 중국 유일 초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수나라를 먼저 공격하고 이 때문에 쳐들어 온 수나라를 쳐서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이후 300만 대군을 무찔러 대승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또다시 쳐들어 온 수나라 군사를 무찔러 반란이 일어나 도주하게 하였고,

그 다음 수나라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도 수양제가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곡사정을 돌려주어 수양제에게 스스로 도망갈 핑계를 주어 수나라 스스로 붕괴하도록 유도,

수양제가 죽고 수나라가 스스로 멸망하게 하였으니,

 

고구려가 중국 유일 초강대국보다 더 강함을 보여준 우리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님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고구려가 그 당시 중국 유일 초강대국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님입니다.

 

5)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은 중국이 최대강국이었을 때와 우리민족이 최강이었을때

누가 이길수 있는가를 증명한 전쟁이었습니다.

 

지금 중국이 한창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는데, 만약 우리나라도 핵무기등 국력을 갖추어 강국이 되었을때,

중국과 싸우면 누가 이기겠는가?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이긴다는 것입니다.

조상들도 어마어마한 나라와 싸워서 이겼는데 우리라고 못하겠습니까?

 

우리도 핵무기등을 갖출수 있고, 충분히 국력을 갖춘 강국이 되면 분명히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의 후손이고 그 위대한 조상의 핏줄을 이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