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군수품과 기계와 공격용 도구가 산처럼 쌓였고, 보루와 장막이 그대로여서 움직이지 않았으나,
무리의 마음이 떨며 두려워져 다시 부서를 나눌 새도 없이 여러 길로 흩어졌다.
우리 군사는 즉시 이것을 깨달았으나 감히 나가지 못하고 다만 성안에서 북치고 고함을 지를 뿐이었다.
다음날 오시(午時)가 되어 그제야 점차 밖으로 나갔으나, 수나라 군사가 속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하였다.
이틀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수천 명의 군사를 내어 뒤를 밟아 쫓았으나, 수나라 군사가 많은 것을 두려워하여 감히 압박하지 못하고,
항상 8, 90리의 거리를 두었다.
요수에 거의 이르러서 황제의 병영이 다 건넌 것을 알고는 그제야 감히 후군을 압박하였다.
이때 후군도 수만 명이나 되었는데 우리 군사는 좇아가 습격하여 수천 명을 죽였다.
[원문]
軍資器械攻具 積如丘山 營壘帳幕 案堵不動 衆心忷懼 無復部分 諸道分散 我軍卽時覺之
然不敢出 但於城內鼓噪 至來日午時 方漸出外 猶疑隋軍詐之
經二日 乃出數千兵追躡 畏隋軍之衆 不敢逼 常相去八九十里 將至遼水
知御營畢度 乃敢逼後軍 時 後軍猶數萬人 我軍隨而鈔擊 殺略數千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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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수나라 군사는 군수품과 기계와 공격용 도구를 산처럼 쌓아놓고 그대로 달아납니다.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무리의 마음이 떨며 두려워져
다시 부서를 나눌 새도 없이 여러 길로 흩어집니다.
마치 흙더미가 무너지듯이 순식간에 무너져 흩어져 버리고 만것입니다.
얼마나 급했던지 야밤에 도망을 갔으니 이것을 야반도주라고 합니다
2) 이렇게 해서 고구려와 수의 3차 대전도 수나라가 일방적으로 도주하여
고구려의 승리, 수나라의 일방적 패배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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