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여름 4월에 황제가 요하를 건너서, 우문술과 양의신(楊義臣)을 보내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다.
왕인공이 부여도로 나와서 진군하여 신성(新城)에 이르자, 우리 군사 수만 명은 막아 싸웠다.
[왕]인공이 굳센 기병 1천 명을 거느리고 이를 쳐서 깨뜨렸으므로, 우리 군사는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황제가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요동을 공격하였는데 편의에 따라 일을 처리하게 하였으므로,
비루(飛樓)·동차(橦車)·운제(雲梯)·지도(地道)로 사면에서 함께 진격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우리는 임기응변으로 막았으므로 20여일 동안 함락되지 않고, 적과 아군에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충제(衝梯)의 장대의 길이가 15길이었는데, 효과 심광(沈光)이 그 꼭대기에 올라가 성을 내려다 보면서 우리 군사와 싸우는데
칼을 가지고 맞붙어 십수 명을 죽였다.
우리 군사는 다투어 그를 공격하여 [그가] 떨어지게 되었는데, 미처 땅에 떨어지기 전에 마침 장대에 줄이 늘어져 있어,
[심]광이 [거기에] 매달려 다시 올라갔다. 황제가 그것을 보고 장하게 여겨 즉시 조산대부(朝散大夫)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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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수양제가 또다시 고구려에 침입합니다.
많은 신하들의 만류를 듣지않고 고집을 부리고 고구려에 침입하지만
이번에는 신성에서 막히고 요동성에서 또다시 막혀서 고전합니다.
300만을 동원해도 안되었는데 될 리가 없습니다.
2) 오늘 올린 부분을 보면 우문술이 나오는데 이자는 저번에 고구려에 와서 참혹한 대패를 한 자입니다.
그런데 수양제는 그를 왜 죽이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수나라 자체가 우문씨의 북주에서 양위를 받아 세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수나라 자체가 원래 우문씨의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30만 대군쯤 몰살 당했다고 해서 죽일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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