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 -16

상 상 2012. 2. 21. 18:29

[번역문]

가을 7월에

[수나라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군대의 반이 건넜을 때 우리 군사가 뒤에서 후군을 쳤으므로,

우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군대가 모두 무너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장수와 사졸들이 달아나 돌아가는데,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압록수에 이르러 450리를 행군하였다.

 

장군인 천수(天水) 사람 왕인공(王仁恭)이 후군이 되어 우리 군대를 쳐서 물리쳤다.

내호아는 [우문]술 등이 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으며,

오직 위문승의 1군만이 홀로 온전하였다.

 

처음 9군이 요하를 건넜을 때는 무릇 30만 5천 명이었는데,

요동성으로 돌아가 다달았을 때는 겨우 2천7백 명이었으며,

쌓아둔 기계가 억만을 헤아렸으나 모두 잃어버려 없어졌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계묘일[25일]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원문]

秋七月, 至薩水, 軍半濟, 我軍自後擊其後軍,

右屯衛將軍辛世雄戰死. 於是, 諸軍俱潰, 不可禁止. 將士奔還,

一日一夜, 至鴨淥水{鴨綠水}, 行四百五十里.

將軍天水王仁恭爲殿, 擊我軍却之.

來護兒聞述等敗, 亦引還. 唯衛文昇一軍獨全.

初, 九軍到{度}遼, 凡三十萬五千,

及還至遼東城, 唯二千七百人,

資儲器械巨萬計, 失亡蕩盡.

帝大怒, 鎖擊{繫}述等, 癸卯引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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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수나라 30만 대군은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자 죽기 살기로 달아납니다.

하루낮 하루밤에 무려 450리를 도망쳤으니 한편으로는 고구려 군사가 쳐 죽인 것이고

또 한편은 도망가다가 지쳐서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거의 다 죽었습니다.

 

2) 즉, 뒤에서 고구려 군사가 쳐 죽이니, 굶주리고 지친 수나라 군사들은 도망가다가

기운이 다하여 풀 쓰러지듯 다 죽고 남은 사람이 없다시피 합니다.

 

3) 처음 침입할 때 30만 5천 명이었는데, 돌아간 자가 겨우 2천7백 명이었으니,

죽은 자가 30만 2천 3백, 즉 거의 전부가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에 침입한 수나라 군사는 30만 이상이 떼죽음 한 것입니다.

 

잠시 수나라 침입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나라가 1차 침입 때(수문제 때), 30만이 침입하여 10중 8,9가 죽더니

2차 침입 때(수양제)에는 300만 대군으로 침입하였지만 요수를 건널 때 무수한 군사가 죽고

 

요수를 건너와서는 무너지지않는 요동성을 함락시키려고 또 한번 수많은 군사가 떼죽음을 합니다.

 

요동성이 무너지지 않자 초조해진 나머지 30만 정예군을 편성하여

곧장 평양에 침입하였으나 30만 군사가 몰살당합니다.

 

4) 이러한 빛나는 승리를 우리 역사에서는 살수대첩이라고 합니다.

 

5) 이렇게 되자 수양제는 우문술 등을 쇠사슬로 묶고 계묘일[25일]에 남은 [군대를] 이끌고 돌아갑니다.

 

6) 따라서 수양제는 2월에 요수에 도착하여 7월 25일(계묘일)에

자기 나라로 돌아감으로써 고구려, 수나라 2차 대전이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