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 - 15

상 상 2012. 2. 20. 18:46

[번역문]

[우문]술은 군량이 떨어졌으므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우]중문이 정예군으로 [을지]문덕을 쫓으면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문]술이 이것을 굳이 말리니 [우]중문이 성내며 말하였다.

“장군은 10만 군사에 의지하고도 작은 도적을 깨뜨리지 못하였으니 무슨 낯으로 황제를 뵈올 것이요?

또한 [나] [우]중문은 이번 걸음에 본래 공로가 없을 것을 알고 있었소.

왜냐하면 예전의 훌륭한 장수가 능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중의 일을 결정하는 것이 한 사람에게 있었는데,

지금 사람마다 각각 다른 마음을 가졌으니, 어떻게 적을 이길 수 있겠소?”

 

이때 황제는 [우]중문이 계획이 있을 것으로 여겨,

여러 군대로 하여금 [그에게] 지휘를 묻고 품의하게 하였으므로, 이 말을 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우문]술 등이 부득이 그의 말에 따라, 여러 장수와 함께 물을 건너 [을지]문덕을 쫓았다.

 

[을지]문덕은 [우문]술의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짐짓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울 때마다 도망가니,

[우문]술이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모두 이겼다.

 

[우문술이] 이미 여러번 승리한 것을 믿고 또 여러 사람의 의논에 강제되어,

이리하여 마침내 동쪽으로 나아가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서 산을 의지하여 진을 쳤다.

 

[을지]문덕은 다시 사자를 보내 거짓 항복하며 [우문]술에게 청하였다.

“만약 군대를 돌리시면 왕을 모시고 [황제의] 행재소로 알현하겠습니다.”

 

[우문]술은 사졸들이 피로하고 쇠약해져 다시 싸울 수 없는 것을 보고,

또 평양성이 험하고 튼튼하여서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려운 것을 헤아리고, 마침내 그 속임수에 따라 되돌아갔다.

 

[우문]술 등이 방형의 진을 이루고 행군하였는데,

우리 군대가 사방에서 습격하니 [우문]술 등이 한편 싸우며 한편 행군하였다.

 

[원문]

述以糧盡欲還. 仲文議以精銳追

文德, 可以有功, 述固止之. 仲文怒曰: “將軍仗十萬之衆, 不能破小賊, 何顔以見帝?

且仲文此行, 固知無功. 何則? 古之良將, 能成功者, 軍中之事, 決在一人. 今人各有心,

何以勝敵?” 時, 帝以仲文有計劃, 令諸軍諮稟節度, 故有此言. 由是,

述等不得已而從之, 與諸將, 渡水追文德. 文德見述軍士有饑色, 故欲疲之,

每戰輒走. 述一日之中, 七戰皆捷, 旣恃驟勝, 又逼群議, 於是, 遂進東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文德復遣使詐降,

請於述曰: “若旋師者, 當奉王, 朝行在所.”

述見士卒疲弊, 不可復戰, 又平壤城險固, 度難猝拔, 遂因其詐而還.

述等爲方陣而行, 我軍四面鈔擊, 述等且戰且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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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을지문덕의 전략이 빛을 발합니다.

 

적이 굶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짐짓 그들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울 때마다 져주고 도망갑니다.

그러니 [우문]술이 하루 동안에 일곱 번 싸워 일곱 번 모두 이깁니다.

 

2) 이렇게 되니 수나라 군사는 계속 진격할 수 밖에 없고, 드디어 평양 30리 되는 곳까지 가게 됩니다.

이미 군량도 다 떨어지고 지칠대로 지쳐서 걸음도 뗄수 없는 지경인데

싸울때마다 이기니 앞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이렇게 되자 을지문덕 장군이 항복을 한다는 것을 기화로 옳다구나 하고 도망갑니다.

항복이 거짓인줄 뻔히 알지만 우문술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4) 이렇게 수나라 군사 30만이 도망가자 고구려 군사가 사방에서 습격합니다.

이미 상황은, 항복 했는데 어째서 공격하느냐 항복이 거짓이 아니냐 하는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닙니다

수나라 군사들은 죽임을 당하며 그저 도망 가기에 바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