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 -12

상 상 2012. 2. 17. 19:09

[번역문]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내호아(來護兒)가 강회(江淮)의 수군을 거느리고

배를 수백 리에 뻗쳐서 바다를 건너 먼저 패수(浿水)로부터 들어와서,

평양에서 60리 떨어진 곳에서 우리 군사와 서로 맞닥뜨리자 진격하여 이를 크게 깨뜨렸다.

[내]호아가 승세를 타고 성으로 달려오려고 하였으나, 부총관(副摠管) 주법상(周法尙)이 말리며,

여러 군대가 오기를 기다려 함께 나아갈 것을 청하였다.

[내]호아가 듣지 않고 정병 수만 명을 뽑아 곧바로 성 밑에 이르렀다.

 

우리 장수는 나성 안의 빈 절 속에 군사를 숨겨 두었다가, 군사를 내어 [내]호아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하였다.

[내]호아가 쫓아 성으로 들어와서 군사를 놓아 약탈하느라고 다시 대오를 갖추지 못하였다.

 

[이때] 숨은 군사들이 나가니 [내]호아가 크게 패하고 겨우 죽음을 면하였으며, 병졸이 돌아간 자가 불과 수천 명이었다.

우리 군대는 뒤쫓아 배 있는 곳까지 이르렀으나, 주법상이 진영을 정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우리 군대는 이에 후퇴하였다.

[내]호아가 군사를 이끌고 바닷가 포구로 돌아가 주둔하였으나, 다시는 감히, 머무르면서 여러 군대에 호응하지 못하였다.

 

[원문]

左翊衛(-大)將軍來護兒, 帥江淮水軍,

舳艫數百里, 浮海先進入自浿水, 去平壤六十里. 與我軍相遇, 進擊大破之.

護兒欲乘勝趣其城, 副摠管周法尙止之, 請俟諸軍至俱進.

護兒不聽, 簡精甲數萬, 直造城下. 我將伏兵於羅郭內空寺中, 出兵與護兒戰, 而僞敗.

護兒逐之入城, 縱兵俘掠, 無復部伍. 伏兵發, 護兒大敗, 僅而獲免, 士卒還者,

不過數千人. 我軍追至舡所, 周法尙整陣待之, 我軍乃退.

護兒引兵還屯海浦, 不敢復留應接諸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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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수양제가 직접 독려하는 육군 300만이 지지부진하고 있는 동안

내호아가 이끄는 수군이 배를 수백 리에 뻗쳐서 바다를 건너 먼저 평양쪽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수군의 규모 또한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는데

배가 수백 리에 뻗친 규모입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수를 보면 정병으로 뽑은 것만 수만 명입니다.

 

2) 이 대목에서 사기 조선열전과 비교하면 비슷합니다.

사기 조선열전에서 육군을 이끌고 간 순체(좌장군)는 그 당시 국경인 그 당시 패수(난하?, 대릉하?)에서 패해서 지지부진하였고

수군 장수 양복(누선장군)은 수군을 이끌고 먼저 왕검성에 도착하여 육군을 기다리지 않고 고조선을 공격하다가 패하여

산중에서 10여일을 숨어 지낸적이 있습니다.

 

3) 여기서도 보면 내호아가 수군을 이끌고 평양에 먼저 도착하고,

육군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 평양을 공격하다가 패하고 맙니다.

 

4) 정예병만 뽑아 수만 군사로 편성하여 공격한 결과 대패해서

내호아는 겨우 죽음을 면하고 살아 돌아간 군사는 불과 수천입니다.

 

고구려의 대승이며 완벽한 승리로 이로써 수나라 수군은

‘다시는 감히, 머무르면서 여러 군대에 호응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이 평양전투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건무 라는 분입니다.

건무는 영양왕의 이복 동생이며 영양왕을 이어서 다음 임금(영류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