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년 (AD 614) : 왕을 입조하게 하였으나 왕은 따르지 않았다
[번역문]
25년(614) 봄 2월에 황제가 모든 신하들에게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정벌할 일을 의론하게 하였는데,
여러 날 동안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조서를 내려 천하의 군사를 다시 징발하여 여러 길로 함께 진군하게 하였다.
가을 7월에 황제의 수레가 회원진(懷遠鎭)에 행차하였다.
이때 천하가 이미 어지러워져서 징발된 군사들이 기일을 어기고 도달하지 못한 자가 많았으며, 우리 나라도 역시 지쳐 있었다.
내호아가 비사성(卑奢城)에 이르자 우리 군사가 맞아 싸웠으나, 내호아가 쳐서 이기고 평양으로 향하려고 하였다.
왕은 두려워 사신을 보내 항복을 청하고, 그에 따라 곡사정을 돌려 보내니,
황제가 크게 기뻐하고 절부를 가진 사신을 보내 내호아를 소환하였다.
[원문]
二十五年 春二月
帝詔百寮 議伐高句麗 數日無敢言者 詔復徵天下兵 百道俱進
秋七月 車駕次懷遠鎭
時 天下已亂 所徵兵多失期不至 吾國亦困弊 來護兒至卑奢城
我兵逆戰 護兒擊克之 將趣平壤 王懼遣使乞降 囚送斛斯政
帝大悅 遣使持節 召護兒還
=========================================================================
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수양제는 614년 또 고구려에 침입합니다.
수양제는 영양왕 23년(612년) 300만 대군으로 침입해서 살수대첩으로 대패한데 이어
영양왕 24년(613년) 연달아 고구려에 침입하였다가 양현감의 반란으로 도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614년에 고구려에 침입합니다.
마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칠종칠금을 연상케 합니다.
안되는 것을 계속하니 수양제가 자기의 종말을 재촉합니다.
2) 수양제가 고구려 침공을 얘기하자 이번에는 신하들이 어느한 사람 따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3) 수양제가 가을 7월에 회원진(懷遠鎭)에 행차 하지만
이때 천하가 이미 어지러워져서 징발된 군사들이 기일을 어기고 도달하지 못한 자가 많습니다.
이때는 이미 수양제의 명령이 먹히지 않는 상태가 되버렸습니다.
고구려에 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온 천하에 퍼져 돌아다니는 지경이니 어느 누가 틀림없이 죽는 곳으로 가겠습니까?
또,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그때 7월이 이미 가을이니 고구려에 도착하면 겨울이 되는데
지금이나 예전이나 요하쪽과 러시아 연해주쪽은 매우 추운 곳이어서
고구려 공격은 고사하고 가다가 얼어죽을 것이 뻔합니다.
이러저러한 사정 때문에 고구려에 침입하면 틀림없이 패배할 텐데도
수양제는 고집을 피우고 고구려에 또 침입 합니다.
4) 수나라 수군은 비사성까지 진격했으나, 고구려군은 하나뿐인 성문을 굳게 닫고 저항해
수나라군은 단 하나의 성도 빼앗지 못합니다.
수양제는 결국 고구려에 대해 자신을 배반한 곡사정을 인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영양왕은 수양제의 체면을 생각해서 곡사정을 돌려 보냅니다.
5) 여기서 또다시 항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수서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써서 그런 것입니다.
수서에 써 있는대로 라면, 고구려는 벌써 두 번이나 항복했는데 두 번째 항복이라는 말이 나올 때
수나라 30만 대군을 살수에서 몰살 시켰으니 고구려가 무슨 항복을 했다는 말입니까?
자기들이 몰살을 당하고도 고구려가 항복했다는 말을 써 놓았으니
이쯤되면 중국 사람들이 병적인 거짓말을 알 수 있습니다.
죽어도 남이 항복했다고 써놓는 말장난, 어림없는 붓놀림
이것은 병적인 자존심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완전히 거짓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으니
무슨 요동성이 위험 했다느니, 무슨 고구려가 항복했다느니 하는 따위의
어림없는 수작과 붓놀림에 더 이상 속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싸울 때마다 이겼는데 무엇이 두려운 게 있을까요?
또 수나라가 이미 어지러워 져서 수양제가 어렵다는 것을 고구려에서 뻔히 아는데
고구려 임금이 두려워서 곡사정을 보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요?
이긴 사람들을 보고 두려워한다고, 완전히 반대로 써놓는 사람들의 붓장난 놀랍기만 합니다.
하여튼 어림없는 수작을 사실인양, 완전히 반대로 써놓는 그 뻔뻔함이 춘추필법이라고 하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춘추필법으로 써놓은 사서를 마치 사실인 양,
무슨 절대적인 역사적 사실인 양 떠드는 자들의 뻔뻔함은 더욱 놀라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고구려 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7대 영류왕 (1) (0) | 2012.02.29 |
|---|---|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23) 끝부분 고구려, 수 4차 대전(2) (0) | 2012.02.28 |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 -21 고구려, 수 3차 대전(4) (0) | 2012.02.26 |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 -20 고구려, 수 3차 대전(3) (0) | 2012.02.25 |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제 26대 영양왕 -19 고구려, 수 3차 대전(2) (0) | 2012.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