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년 (AD 626) : 신라와 백제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번역문]
9년(626)에 신라와 백제가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고구려가 길을 막아 입조하지 못하게 하고 또 거듭 침략합니다.”라고 말하였다.
황제가 산기시랑 주자사(朱子奢)를 보내 절부를 가지고 화친을 권하게 하였다.
왕은 표를 올려 사죄하고 두 나라와 화평할 것을 청하였다.
11 년 (AD 628) : 가을 9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번역문]
11년(628) 가을 9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태종(太宗)이 돌궐의 힐리극한(頡利可汗)을 사로잡은 것을 축하하고,
겸하여 봉역도(封域圖)를 바쳤다.
12 년 (AD 629) : 가을 8월에 신라 장군 김유신이
[번역문]
12년(629) 가을 8월에 신라 장군 김유신이 동쪽 변경으로 쳐들어 와서 낭비성(娘臂城)을 깨뜨렸다.
9월에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14 년 (AD 631) : 당나라가 광주사마(廣州司馬) 장손사(長孫師)를
[번역문]
14년(631)에 당나라가 광주사마(廣州司馬) 장손사(長孫師)를 보내 수나라 전사들의 해골을 묻은 데에 와서 제사지내고,
당시 세운 경관(京觀)을 허물었다.
봄 2월에 왕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장성(長城)을 쌓았는데,
동북쪽으로 부여성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바다에까지 이르러 천여 리나 되었다.
무릇 16년만에 공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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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 본문을 보면, 고구려에서 천리 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위치는 동북쪽으로 부여성으로부터 서남쪽으로 바다에 이르는 곳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하여
① 구당서 동이열전은
‘[정관][貞觀] 5년(A.D.631; 고구려高句麗 영류왕榮留王 14)에 광주도독부(廣州都督府) 사마(司馬) 장손사(長孫師)를 보내어
수대(隋代)에 전망(戰亡)한 해골(骸骨)을 거두어 묻어 주고, 고[구]려(高[句]麗)가 세워 놓은 경관(京觀)을 헐어버리게 하였다.
건무(建武)는 그 나라가 침입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장성(長城)을 쌓았는데,
동북으로 부여성(扶餘城)에서 서남으로 바다에 이르기까지 1천여리에 이르렀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으며
② 신당서 동이열전은
‘태종(太宗)은 조서(詔書)를 내려 광주사마(廣州司馬) 장손사(長孫師)에게 [고구려高句麗에] 가서 수(隋)나라 군사의 전망(戰亡)한
해골(骸骨)을 거두어 묻고, 고[구]려(高[句]麗)가 세워 놓은 경관(京觀)을 헐어 버리게 하였다.
이에 건무(建武-영류왕)가 두려워하여 천리의 장성(長城)을 쌓으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길림성 서북부에서부터 요녕성 대련시 동쪽 약 100km부근까지 뻗어있는 장성은
우리의 선조(先祖)인 고구려 사람들이 쌓은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고구려 장성입니다.
이것은 삼국사기, 구당서, 신당서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해전, 중국에서는 이것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하고, 만리장성이 압록강까지 이어졌다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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