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24대 양원왕 본기- 1)

상 상 2012. 1. 30. 18:38

0 년 (AD 545) : 양원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양원왕(陽原王)<혹은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이라고도 하였다.>은 이름이 평성(平成)이고 안원왕의 맏아들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기개가 크고 호탕함이 남보다 뛰어났다.

안원왕이 재위 3년에 태자로 세웠고, 15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보내 조공하였다.

 

2 년 (AD 546) : 2월에 서울의 배나무 가지가 서로 붙었다.

[번역문]

2년(546) 봄 2월에 서울의 배나무 가지가 [서로] 붙었다. 여름 4월에 우박이 내렸다.

겨울 11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보내 조공하였다.

 

3 년 (AD 547) : 7월에 백암성을 고쳐 쌓고, 신성을 수리

[번역문]

3년(547) 가을 7월에 백암성(白巖城)을 고쳐 쌓고, 신성(新城)을 수리하였다.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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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양원왕은 가운데 ‘원’자가 들어가는 임금 중에서 두 번째 임금입니다.

 

2)양원왕의 또 다른 호칭을 보면 ‘양강상호왕(陽崗上好王)’입니다.

여기서 보면 상왕(上王) 또는 호왕(好王)의 명칭을 쓰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호왕(好王)은 제 19대 광개토왕의 정식 명칭 중, 끝 이름이‘호태왕’임을 보았을 때

‘호왕’이라는 명칭이나 태왕(太王), 또는 상왕(上王)이라는 명칭을 고구려에서는 잘 썼던 것으로 생각 됩니다.

 

※광개토왕의 정식 명칭: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 출처,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

 

3) 양원왕도 동위와 계속해서 교류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조공이라는 말이 왜 교류, 교역관계인지는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4) 양원왕 3년(547) 가을 7월에 백암성(白巖城)을 고쳐 쌓고, 신성(新城)을 수리합니다.

백암성과 신성은 지금의 요녕성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