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23대 안원왕 본기- 1)

상 상 2012. 1. 27. 19:40

0 년 (AD 531) : 안원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안원왕(安原王)은 이름이 보연(寶延)이고 안장왕의 아우이다.

키가 일곱 자 다섯 치이고 큰 도량이 있었으므로 안장왕은 그를 사랑하였다.

안장왕이 재위 13년에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으므로 즉위하였다.

양(梁)나라 고조가 조서를 내려 [전왕의] 작위를 잇게 하였다.

 

2 년 (AD 532) : 3월에 위(魏)나라 황제가 조서를 내려

[번역문]

2년(532) 봄 3월에 위(魏)나라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을]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散騎常侍) 영호동이교위(領護東夷校尉)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으로 삼고, 의관·수레·깃발의 장식을 내렸다.

여름 4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6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겨울 11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

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고구려 임금 중에서 ‘원’자가 들어가는 왕은 세분입니다.

그 중에서 안원왕이 첫 번째 ‘원’자가 들어가는 왕입니다.

2) 고구려에서 왕 이름에 돌림자를 쓴 예를 다시 보겠습니다.

 

첫째, 대왕(大王): 태조대왕(太祖大王: 6대), 차대왕(次大王: 7대), 신대왕(新大王: 8대)

둘째, 고국(故國)으로 시작하는 왕호(王號):

      고국천왕(故國川王: 9대), 고국원왕(故國原王: 16대),고국양왕(故國壤王: 18대)

셋째, 가운데에 천(川)자가 들어가는 왕: 동천왕-11대, 중천왕-12대, 서천왕-13대, 미천왕-15대

넷째, 가운데에 원(原)자가 들어가는 왕: 안원왕( 23대), 양원왕(24대), 평원왕(25대)

 

3) 이즈음 북위에서는 중대한 정변이 일어납니다.

북위의 황족 탁발씨는 선비족의 한화정책을 쓰게 되었는데 이것이 선비족들의 반발을 일으켜 6진의 난이 일어나고

이 6진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흉노족 이주영이 대군벌로 성장하는데,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하는 하음의 변(河陰의 變)을 일으킵니다.

 

이후, 이주씨 휘하의 장군, 고환(高歡)이 그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고 532년 낙양에 들어와 이주씨에 의해 세워진

절민제(節閔帝)을 폐위하고 효무제를 세웁니다.

 

그리고 고환은 이주씨 일당을 각지에서 격파하여 정권은 고환에게로 넘어 갑니다.

그러나 효무제는 고환의 전횡을 싫어해 낙양을 탈출해 장안(長安)으로 도망쳐 우문태(宇文泰)에게 의지하자,

고환은 효정제(孝靜帝)를 옹립하고 534년 수도를 업으로 옮깁니다.(동위)

 

같은 해 우문태는 효무제를 살해하고 문제(文帝)를 즉위시키니(서위) 이로써 북위는 동서로 분열하게 됩니다.

 

3) 이렇게 북위는 망해가고 있었는데, 고구려왕을 책봉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일이며

그것의 참뜻은 왕위에 즉위한 것에 대한 축하이겠습니다.

 

4) 북조의 강력한 북위도 이 모양인데, 북조보다 허약한 남조 양나라에서 무슨 조서로 왕위를 있게 한다는 말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고구려와 양나라 사이는 엄청나게 먼 거리이고 그 사이에 그래도 강한 힘을 가진 북조의 북위가 버티고 있는데

무슨 양나라가 조서로 고구려 왕위를 잇게 한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허풍이며,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역사적 배경과 역사적 진실을 모르는 자들, 역사 사기꾼들은 이러한 역사적 진실을 감추고 이러한 삼국사기 글귀만을 가져와서

고구려가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았다고 하는 식으로 우리역사를 왜곡하고 매도하는 소동을 벌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든지 사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같은 사기가 통하지 않으며,

그러한 말장난에 속아 넘어가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조서 운운의 참모습은 양나라와 고구려의 외교관계 강화이겠습니다.

양나라와 북위가 서로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강화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과 고구려의 국력 때문이며 각기 양국의 안위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