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23대 안원왕 본기- 2)

상 상 2012. 1. 28. 19:18

3 년 (AD 533) : 정월에 왕자 평성(平成)을 태자로 삼았다.

[번역문]

3년(533) 봄 정월에 왕자 평성(平成)을 태자로 삼았다.

2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4 년 (AD 534) : 동위에서 왕에게 표기대장군을 더하고,

[번역문]

4년(534)에 동위(東魏)에서 조서를 내려 왕에게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을 더하고,

나머지[작위]는 모두 이전과 같게 하였다.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5 년 (AD 535) : 2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5년(535) 봄 2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여름 5월에 나라의 남쪽에 홍수가 나서 백성들의 집이 떠내려가고 죽은 자가 200여 명이나 되었다.

겨울 10월에 지진이 일어났다. 12월에 천둥이 치고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6 년 (AD 536) : 크게 가물었으므로, 굶주린 백성들을 위무

[번역문]

6년(536) 봄과 여름에 크게 가물었으므로, 사신들을 보내 굶주린 백성들을 위무하고 구제하였다.

가을 8월에 누리의 재해가 있었다. 사신을 동위(東魏)에 보내 조공하였다.

 

7 년 (AD 537) : 백성들이 굶주려 왕은 두루 위무하고 구제

[번역문]

7년(537) 봄 3월에 백성들이 굶주려 왕은 [나라 안을] 두루 돌며 위무하고 구제하였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동위(東魏)에 보내 조공하였다.

 

9 년 (AD 539) : 5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9년(539) 여름 5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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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안원왕 4년(534) 동위가 서위보다 먼저 고구려에 손을 내밀어 외교관계를 가집니다.

(동위에서 안원왕에게 무슨 조서를 내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동위의 실권자는 고구려와 같은 고씨이기 때문으로 짐작 됩니다.

 

중국의 외교정책은 대대로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가까운 나라끼리 교분을 두터히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라고 하겠습니다.

 

2)양나라가 고구려와 외교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3) 9년(AD 539) 5월 기록을 보면 서위와는 교류가 없고, 계속해서 동위하고 양나라와 사신을 교환하고 친선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동위와 친선을 갖는 것은 동위의 실제 권력자가 고구려와 같은 고씨이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 됩니다.

 

4) 서위가 거리가 먼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거리가 가까운 동위가 고구려와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방식인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곳은 교류하고 가까운 곳은 공격한다) 정책을 기준으로 보았을때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이것은 동위가 고씨의 나라로 고구려의 왕가와 같은 성씨로 동위는 고구려의 일파 즉,

같은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