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23대 안원왕 본기- 3)

상 상 2012. 1. 29. 19:28

10 년 (AD 540) : 9월에 백제가 우산성을 포위하니

[번역문]

10년(540)가을 9월에 백제가 우산성을 포위하니, 왕은 날랜 기병 5천 명을 보내 쳐서 쫓아보냈다.

겨울 10월에 복숭아와 오얏꽃이 피었다. 12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11 년 (AD 541) : 3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11년(541)봄 3월에 사신을 양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12 년 (AD 542) : 3월에 바람이 크게 불어 나무가 뽑히고

[번역문]

12년(542)봄 3월에 바람이 크게 불어 나무가 뽑히고 기왓장이 날아갔다.

여름 4월에 우박이 내렸다. 겨울 12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13 년 (AD 543) : 11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13년(543)겨울 11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14 년 (AD 544) : 11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14년(544)겨울 11월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15 년 (AD 545) : 3월에 왕이 죽어 왕호를 안원왕이라고 하였다

[번역문]

15년(545) 봄 3월에 왕이 죽었다. 왕호를 안원왕이라고 하였다.

<이 때가 양나라의 대동(大同) 11년이요, 동위의 무정(武定) 3년이었다.

양서에 『안원[왕]이 태청(太淸) 2년(548)에 죽자 그 아들을

영동장군(寧東將軍) 고구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고 하였으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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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본문을 보면 백제와는 싸움이 계속 되고있고 동위와 양나라와는 양쪽으로 외교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15년(545) 봄 3월에 왕이 죽었다. 왕호를 안원왕이라고 하였다.

<이 때가 양나라의 대동(大同) 11년이요, 동위의 무정(武定) 3년이었다.

양서에 『안원[왕]이 태청(太淸) 2년(548)에 죽자 그 아들을

영동장군(寧東將軍) 고구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고 하였으나 잘못이다.>

 

⇒ 이 기록도 한번 잘 살펴봐야 할 기록으로 생각됩니다.

또다시 양서의 잘못을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지적하고 있으나 역시 「이 때가 양나라의 대동(大同) 11년이요,

동위의 무정(武定) 3년이었다」는 기록은 고기(古記)의 기록이고 『안원[왕]이 태청(太淸) 2년(548)에 죽자 그 아들을

영동장군(寧東將軍) 고구려왕 낙랑공으로 삼았다.』는 기록은 양서의 기록으로 혹시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고기(古記)가

고구려의 역사를 줄인 증거나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