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년 (AD 548) : 예의 군사 6천 명으로 백제 독산성을 공격
[번역문]
4년(548) 봄 정월에 예(濊)의 군사 6천 명으로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 장군 주진(朱珍)이 와서 [백제를] 구원하였으므로 [우리 군사는]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가을 9월에 환도에서 상서로운 벼이삭을 바쳤다.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5 년 (AD 549) :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5년(549)에 사신을 동위에 보내 조공하였다.
6 년 (AD 550) : 정월에 백제가 침범해 와서 도살성을 함락.
[번역문]
6년(550) 봄 정월에 백제가 침범해 와서 도살성(道薩城)을 함락시켰다.
3월에 백제 금현성(金峴城)을 공격하였는데, 신라 사람들이 틈을 타서 두 성을 빼앗아 갔다.
여름 6월에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에 북제가 왕을 사지절(使持節) 시중(侍中) 표기대장군 영호동이교위 요동군개국공 고구려왕으로 봉하였다.
7 년 (AD 551) : 5월에 사신을 북제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7년(551) 여름 5월에 사신을 북제에 보내 조공하였다.
가을 9월에 돌궐(突厥)이 신성으로 와서 포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백암성으로 옮겨 공격하였다.
왕은 장군 고흘(高紇)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막아 싸워서 이기고, 1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신라가 공격해 와서 10성을 빼앗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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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양원왕4년(548) 봄 정월에 예(濊)의 군사 6천 명으로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합니다.
문자명왕 16년(507년)에는 백제의 한성을 치려고 고구려 장수와 말갈을 함께 보낸적이 있고 선비족도 여러번 동원한 적도 있는 등
고구려는 우리종족인 고구려 사람들 밑에 여러 종족을 거느리고 함께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독산성 공격에 신라가 구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즉, 이때는 백제와 신라가 연맹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고구려와 백제는 서로 공방을 계속하고 이틈을 타서 신라는 고구려의 성을 빼앗아 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4) 양원왕 5년(549년)까지 동위와 교류하다가 양원왕 6년(550년)에는 북제와 외교관계를 맺습니다.
이는 북제가 동위를 이은 왕조이기 때문입니다. 북제 역시 동위와 마찬가지로 고씨의 나라인데 동위의 허수아비 황제 효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동위의 실권자 고환의 차남 ‘고양’이 세운 나라입니다.
5) 양원왕 7년(551) 돌궐이 우리역사에 처음 나타납니다.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하는데 이 백암성과 신성은 「양원왕 3년(547) 가을 7월에 백암성(白巖城)을 고쳐 쌓고,
신성(新城)을 수리」해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과연 양원왕은 앞을 내다보는 뛰어난 안목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6) 고구려는 여전히 북제와 교류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북제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서위→ 북주와는 교류관계를 갖지않고 있음- 북제는 고구려와 같은 성씨인 고씨가 세운 나라임)
※ 동위는 북제로 이어졌고 서위는 북주로 이어졌음(동위와 북제: 고씨, 서위와 북주: 우문씨)
7) 돌궐 침입을 막고 싸우는 사이를 틈타 신라가 또다시 10개 성을 빼앗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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