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년 (AD 552) : 장안성(長安城)을 쌓았다.
[번역문]
8년(552)에 장안성(長安城)을 쌓았다.
10 년 (AD 554) : 백제 웅천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번역문]
10년(554) 겨울에 백제 웅천성(熊川城)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12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고, 얼음이 얼지 않았다.
11 년 (AD 555) : 호랑이가 서울에 들어왔으므로 사로잡았다.
[번역문]
11년(555) 겨울 10월에 호랑이가 서울에 들어왔으므로 이것을 사로잡았다.
11월에 금성[太白]이 낮에 나타났다. 사신을 북제(北齊)에 보내 조공하였다.
13 년 (AD 557) : 4월에 왕자 양성(陽成)을 태자로 삼고,
[번역문]
13년(557)여름 4월에 왕자 양성(陽成)을 태자로 삼고, 마침내 내전(內殿)에서 군신(群臣)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겨울 10월에 환도성간(干) 주리(朱理)가 반역했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15 년 (AD 559) : 3월에 왕이 죽어 왕호를 양원왕이라고 하였다.
[번역문]
15년(559) 봄 3월에 왕이 죽었다. 왕호를 양원왕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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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양원왕 8년(552년)에 장안성을 쌓습니다. 나중에 고구려 서울(수도)을 장안으로 옮기는데
장안(성)에 대해서는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 참고로‘삼국사기 잡지, 고구려 지리’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당서에서는 『평양성은 장안[성]이라고도 하였다.』고 하였으나, 고기(古記)에서는 『평양에서 장안으로 옮겼다.』고 하였으니,
두 성의 다르고 같음과 멀고 가까움을 알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고기,古記란 옛 기록으로 우리의 옛 기록, 즉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옛 기록,
다시 말해서 그때까지 남아 있었던 우리 옛 사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2) 백제와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3) 고구려가 북제와는 계속해서 친교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4) 양원왕 13년(557) 겨울 10월에 환도성간(干) 주리(朱理)가 반역했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5) 환도성은 고구려의 세 번째 서울이자(10대 산상왕 때 옮김) 다섯 번째 서울(16대 고국원왕 때)로써 고구려의 북방에 중요한
거점입니다. 이런 곳을 지키는 자가 반란을 일으키다니 참으로 안 좋은 조짐입니다.
6) 반란을 일으킨 자의 직위가 환도성 간(干)입니다
이 간(干)이라는 명칭은 왕을 가리키는 ‘칸’의 한자식 표현으로 보입니다(예: 칭기즈칸)
‘칸’이라는 명칭을 한자로 표기할 때 간(干) 한(汗) 한(韓) 등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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