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본기

고구려 제20대 장수왕 본기- 4)

상 상 2012. 1. 15. 18:35

42 년 (AD 454) : 7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략

[번역문]

42년(454) 가을 7월에 군사를 보내 신라의 북쪽 변경을 침략하였다.

 

43 년 (AD 455) : 사신을 송(宋)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43년(455)에 사신을 송(宋)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50 년 (AD 462) : 3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50년(462) 봄 3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51 년 (AD 463) : 송나라 세조가 왕을 거기대장군

[번역문]

51년(463)에 송나라 세조(世祖) 효무황제(孝武皇帝)가

왕을 거기대장군(車騎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책봉하였다.

 

53 년 (AD 465) : 2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53년(465) 봄 2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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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여기에 또다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조공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간 메꾸기식의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중국사서에서 그대로 베껴썼기 때문에 김부식이 사대주의자라고 욕을 먹는 것이고,

삼국사기가 사대주의의 산물이라고 매도 당하는 것입니다.

 

2) 장수왕 51년(463년)에 또다시 송세조(효무제 유준)가 장수왕을 책봉했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도 말이 않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도 저번에 알아보았듯이 ‘외교관계를 맺었다’입니다.

 

왜냐하면, 자치통감 남북조 송기5 문제 원가 15년<438년> 3월조의 기록에서 보았듯이 송태조는 고구려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자기의 신하인 왕백구를 풀어줍니다.

유송(남송)의 황제라는 자가 고구려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남송(유송)이 고구려의 왕을 자기 신하로 봉했다 것은 말이 않돼는 것입니다.

 

3)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송세조의 아버지인 송태조(문제 유의륭)가 430년, 450년 2번에 걸쳐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에게 패배하여 회북(淮北)을 빼앗겨

군사비가 증가하고, 태자에게 암살당하면서 송나라는 급속히 쇠퇴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암살한 형을 죽이고 제위에 오른 사람이 송세조 효무제(孝武帝)입니다.

따라서 나라도 기울었고, 거리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으며,

송나라(유송)와 고구려 사이에 그 당시 거대한 강대국인 북위가 있는 마당에 고구려의 왕을 자기나라 신하의 왕으로 책봉했다?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 역시 중국식 허풍입니다.

책봉했다는 말의 진정한 뜻은 ‘외교관계를 맺었다.’ 입니다.

 

고구려는 북위를 견제하려고 송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은 것이고,

송나라(유송)도 북위를 견제하려고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외교관계를 맺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