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년 (AD 412) : 장수왕이 왕위에 올랐다.
[번역문]
장수왕(長壽王)의 이름은 거련(巨連)<또는 연(璉)이라고도 썼다.>이고 광개토왕의 맏아들이다.
신체가 크고 기개가 호탕하고 뛰어났다.
광개토왕이 [재위] 18년에 태자로 삼았고, 22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였다.
1 년 (AD 413) : 장사 고익을 진나라에 보내 표를 올리고,
[번역문]
원년(413)에 장사(長史) 고익(高翼)을 진(晉)나라에 보내 표(表)를 올리고, 붉은 무늬있는 흰 말을 바쳤다.
안제(安帝)가 왕을 고구려왕(高句麗王) 낙랑군공(樂浪郡公)으로 봉하였다.
2 년 (AD 414) : 8월에 이상한 새가 왕궁에 모여들었다.
[번역문]
2년(414) 가을 8월에 이상한 새가 왕궁에 모여들었다.
겨울 10월에 왕은 사천(蛇川)의 들로 사냥나가서 흰 노루를 잡았다.
12월에 서울에 눈이 다섯 자나 내렸다.
7 년 (AD 419) : 5월에 나라의 동쪽에 홍수가 나서 위문
[번역문]
7년(419) 여름 5월에 나라의 동쪽에 홍수가 나서, 왕은 사신을 보내 위문하였다.
12 년 (AD 424) : 2월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번역문]
12년(424) 봄 2월에 신라가 사신을 보내 예방하였다.
왕은 그들을 특별히 후하게 위로하였다. 가을 9월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왕은 왕궁에서 군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13 년 (AD 425) :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13년(425)에 위(魏)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15 년 (AD 427) : 서울을 평양으로 옮겼다.
[번역문]
15년(427)에 서울을 평양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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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장수왕 1년(413년)에 동진의 안제(安帝)가 장수왕을 고구려왕(高句麗王) 낙랑군공(樂浪郡公)으로 봉했다는 말은
책봉이 무엇인지, 책봉의 진실, 책봉의 실체를 알 수 있게 하는 기록입니다.
고구려와 동진은 엄청나게 거리가 멀고(남경→북경→심양→평양)
그 사이에 동진보다 훨씬 강대국인 북위가 있어서
동진이 고구려 왕을 자기들의 부하 왕으로 책봉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동진의 안제는 고구려 왕을 자기의 부하로 임명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없을뿐만 아니라
동진과 고구려의 거리나 지리상의 위치, 그 당시 동진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 등으로 보았을 때
동진의 안제가 고구려의 왕을 자기부하로 책봉할 수 없었습니다.
동진의 안제가 아무런 힘이 없었다는 것은 그 당시 동진의 실권자는 유유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유유는 안제를 목졸라 죽이고, 공제를 세우더니(418년)
바로 선양의 형식을 빌어 동진을 멸망시킵니다.(420년, 유유가 유송-남송 건국)
또한 국가로서의 그 당시(413년) 동진을 말한다면 그 당시 동진은 망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위에서 말한대로 유유가 안제를 목졸라 죽이고, 공제를 세운 것이 418년이고
결국 동진이 멸망한 때가 420년입니다.
이렇게 동진과 고구려 사이에는 거리도 엄청나게 멀고, 북위라는 강대국이 있어서
동진은 고구려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미칠수 없는 사이였으며,
또 동진이라는 나라는 망하기 일보 직전의 힘없는 나라였고,
동진의 임금 안제 또한 실권도 없는 임금인 상태였으므로
동진의 안제가 장수왕을 자기나라의 부속국가 왕으로 봉했다는 그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책봉이라는 표현은 아무런 실체도 없고, 효력도 없는, 말뿐인 중국식 허풍이고
자기네들이 자기네 집에서, 자기들끼리 앉아서 일방적으로 한 이야기이며,
자기들끼리 종이장에 제멋대로 쓴 것입니다.(고구려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야기임)
그러면 책봉이라는 것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간의 ‘외교관계를 맺은 것’ 입니다.
그것을 중국 사람들은 자기멋대로(자기식대로?) 책봉했다고 한 것입니다.
2) 『 1 년 (AD 413) : 장사 고익을 진나라에 보내 표를 올리고,』이하의 기록은
‘송서 이만열전 고구려국’의 앞부분 ‘진(晋) 안제(安帝) 의희(義熙) 9년...’를 전재한 것입니다.
3) 장수왕 15년(427년)에 서울을 평양으로 옮깁니다.
※ 참고로 그동안 고구려가 서울(수도)을 옮긴 역사를 다시한번 보면.
① 졸본(시조 주몽때, 고구려 최초의 서울)
② 국내(2대 유리왕때)
③ 환도(10대 산상왕)
④ 평양(11대 동천왕)
⑤ 환도(16대 고국원왕)
⑥ 황성(평양 동쪽: 16대 고국원왕)
⑦ 평양(20대 장수왕)
4) 장수왕 기록은 8회에 걸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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