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년 (AD 437) : 2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25년(437)봄 2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26 년 (AD 438) : 연나라 왕이 요동으로 왔을 때 위로하고
[번역문]
26년(438) 봄 3월. 이전에 연나라 왕 [풍]홍이 요동으로 왔을 때 왕은 사신을 보내 위로하고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 벌판으로 행차하느라고 군사와 말이 피곤하겠습니다.”고 말하였다.
[풍]홍은 부끄럽고 화가 나서 천자를 칭하면서 왕을 꾸짖었다.
왕은 그를 평곽(平郭)에 두었다가 곧 북풍(北豐)으로 옮겼다.
[풍]홍이 평소 우리나라를 업신여겼는데,
여전히 정형(政刑)과 상벌을 마치 제 나라에서 하듯이 하였으므로,
왕은 그의 시자를 빼앗아 버리고 그 태자 왕인(王仁)을 잡아와 인질로 삼았다.
[풍]홍이 이것을 원망해서 송(宋)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표(表)를 올려 맞이해 줄 것을 구하였다.
송나라 태조(太祖)가 사신 왕백구(王白駒) 등을 보내 그를 맞이하고, 아울러 우리에게 명령하여
[연나라 왕에게] 노자(路資)를 마련해 주어서 보내라고 하였다.
왕은 [풍]홍이 남쪽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장수 손수(孫漱)와 고구(高仇) 등을 보내 [풍]홍을 북풍에서 죽이고, 아울러 그 자손 10여 명도 죽였다.
[왕]백구 등은 [자신이] 거느리고 온 군사 7천여 명을 이끌고 손수와 고구를 습격하여, 고구를 죽이고 손수를 사로잡았다.
왕은 [왕]백구 등이 제멋대로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신을 시켜 그를 잡아 [송나라로] 보내었다.
태조는 [고구려가] 멀리 있는 나라이므로 그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왕]백구 등을 감옥에 가두었다가 얼마 후에 풀어주었다.
27 년 (AD 439) : 11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번역문]
27년(439) 겨울 11월에 사신을 위(魏)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12월에 사신을 위나라에 보내 조공하였다.
38 년 (AD 450) : 신라사람들이 변경의 장수를 습격
[번역문]
38년(450)에 신라사람들이 변경의 장수를 습격해서 죽였다.
왕은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려고 하였으나, 신라 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으므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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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사기 원본 출처: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2. 해설 및 분석:
1) 연나라는 본래 선비족의 나라입니다.(연나라는 선비 모용부)
선비는 원래 고구려에 항복해서 속국으로 되어(고구려 제2대 유리왕 11년, 서기전 9년) 지내다가
-아마 이때 고구려 서부 즉 연나부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연나라의 고향이며 뿌리로 연나라에서 매우 아끼고 끝까지 버텼던 곳이
용성-龍城인데 그 용성이 고구려 서쪽 지금의 요녕성 조양시에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이름 연-燕도 자기들이 고구려에 있었던 연나부를 따서 연-燕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개인적인 생각)
제 10대 산상왕 때, 산상왕의 형 ‘발기’가 연나부를 공손도에 바치며 항복하는 통에
선비가 고구려를 떠나 한나라에 붙었습니다.(산상왕 원년, 197년)
그러다가,
2) 장수왕 26년(438년) 연나라 왕을 비롯한 연나라 백성들이 다시 고구려의 품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3) 따라서, 선비 모용부는 고구려에 약 200년 동안 고구려의 품에 있었고
약 240년간 중국을 떠돌다가 다시 고구려의 품으로 되돌아 온 것입니다.
4) 그래서 장수왕 26년(438년) 북연에서 천자라고 부르는 풍홍을
장수왕은 아랫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말 ‘풍군(馮君)’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서 천자라고 자칭하는 자도 고구려에서는 아래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6년(438) 봄 3월. 이전에 연나라 왕 [풍]홍이 요동으로 왔을 때 ...』이하의 기록은
송서 이만열전 고구려전 원가(元嘉) 15년조와 같은 내용이 기재된
자치통감 남북조 송기5 문제 원가 15년<438년> 3월조를 전재한 것입니다.- 번역본 13권
5) 풍홍이 제멋대로 하자 장수왕은 먼저 시자를 빼앗아 버리고 그 태자 왕인(王仁)을 잡아와 인질로 삼아 버립니다.
6) 그런데도 풍홍이 제멋대로 송나라로 가려고 하고,
송태조(문제 유의륭)가 장수왕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자 풍홍을 죽입니다.
이에 대해 풍홍을 데리러 왔던 송나라 사신 왕백구등이 소란을 피우자
왕백구마저 생포하여 송나라로 처형하라고 보냅니다.
이에 대해 송태조는 고구려의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왕백구를 풀어줍니다.
유송(남송)의 황제라는 자가 고구려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남송(유송)의 관계가 이렇습니다.
7) 따라서 중국에서 고구려왕을 무엇으로 봉했다느니 하는 말은(중국에서 고구려 왕을 부하로 삼았다고 하는 말은)
제멋대로 일방적으로 한 허풍임을 다시한번 알 수 있습니다.
8) 여기서 보면 조공이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데 조공의 실체도 알고 보면 교역입니다.
즉 무역입니다. 또다른 측면으로 조공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단재 선생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조공의 실체가 무엇인지 단재선생의 말씀인 조선 상고사를 인용하겠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내조(來朝:조공 왔다)라고 썼음은
지나인(차이나 인-중국인)의 병적인 자존성에 의한 것이니,
이는 근세 청조(淸朝)가 처음 서양과 통할 때 영(英), 로(露) 등 여러 나라가 와서 통상한 사실을 죄다
“모국이 신하를 일컫고 공물을 바쳤다(某國稱臣奉貢-모국칭신봉공).”고 썼음을 보아도 가히 알수 있는 일이니,
그네의 기록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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