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4

상 상 2014. 10. 15. 17:54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4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4)

 

(3) 그러면 신라와 당의 경계가 대동강과 원산이남이라는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가?

    그 근거는 삼국사기 성덕왕 본기 34(735) 기사를 근거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면

성덕왕 34(735) 봄 정월에 김의충(金義忠)을 당나라에 보내 새해를 축하하였다.

2월에 부사(副使) 김영(金榮)이 당나라에서 죽자, 광록소경(光祿少卿) 벼슬을 추증하였다.

()의충이 돌아올 때 조칙으로 패강(浿江) 이남의 땅을 주었다.이렇게 되어 있다.

 

이 기사를 근거로 마치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가 대동강 이남으로 확정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무식한 말이며 황당한 거짓말이다.

그때(7352) 당은 평주(임유관: 오늘날 하북성 당산시 부근)로 쫓겨났다. 평주부터 동쪽으로 갈석산,

그 동쪽으로 오늘날의 요하까지는 거란족이 있었고, 요하부터 그 동쪽으로 대동강 유역에는 발해가 있었다.

 

그런데 무슨 신라와 당의 경계가 대동강 운운하는가?

너무나도 어이없고 황당하며 무식하기 그지없는 거짓말이다.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가 확정된 것은 그 이전 6772월이다.

,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전으로 끝나고(67611)

이에 따라 안동도호부를 당나라가 말하는 요동성에서 신성으로 옮긴 6772월이라는 말이다.

그때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선은 요하(최소한 요하부근)이다.

그 이후부터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요하였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이진충의 난이 일어남에 따라 발해가 건국이 되었을 때는(698~699), 신라와 당의 경계가 모호해 졌고,

당 예종 선천 2(713)에 발해와 당이 정식 수교함에 따라

714년 신성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평주로 옮김으로써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 714년 이후부터 발해가 만주지역을 완전히 장악함에 따라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발해가 있었기 때문에 신라와 당나라는 경계선이라는 게 완전하게 없어졌다.

 

그 후 개원 20(732), 발해(대무예)가 그의 장수 장문휴를 보내어 산동반도에 있는 등주를 공격하자

당 현종은 신라로 하여금 발해의 남쪽을 공격해 주도록 요청하고 신라가 이에 응하여 발해의 남쪽을 공격한다.

 

그 보답으로 7352월 신라 사신 김의충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올 때 대동강 이남의 땅을 주는 것처럼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당이 대동강 이남의 땅을 주고말고 할 자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는 대동강 이남은 물론, 대동강 이북의 땅도 당나라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인 6772월 이후는 요하 이남부터 신라의 땅이었다.

그러다가 발해가 건국한 698~699년부터 714년 안동도호부를 평주로 옮길때까지는

요하 이남과 대동강 사이가 누구의 땅인지 알수 없고(기록이 없음),

714년 안동도호부를 평주로 옮긴 것은 발해가 만주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임이 틀림없는 것이며,

발해는 고구려를 이은 나라이기 때문에 옛 고구려 수도인 평양을 차지하였고 그래서 신라가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라의 북쪽 국경이 대동강이 된 것이다.

 

그런데다가 732년 발해가 산동반도에 있는 등주를 공격하자 당 현종이 신라에게 발해의 남쪽을 공격해 주도록 요청하고

신라가 이에 응하여 발해의 남쪽을 공격하자, 그에 대한 보답인 것처럼 7352월 신라 사신 김의충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올 때

대동강 이남의 땅을 주는 것처럼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 현종이 대동강 이남의 땅은 신라의 영토라고 확인해 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미 그 이전에 당은 고구려 지역과 신라를 포기하였고, 또다시 고구려 지역과 신라를 차지할만한 힘도 없었음은 물론,

북쪽의 돌궐과 서쪽의 토번에게 침략당하여 공주와 땅을 바치면서 평화를 구걸하던 시기였다.

 

그런 비참한 환경에 있던 당이 주둥이만 살아서 대동강 이남의 땅은 신라의 땅입니다라고 확인한 말을

마치 그때부터 대동강이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로 확정된 것처럼 떠드는 것은

무식의 산물이자 대국민 사기이며 식민지 사관의 개들이 벌인 더러운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