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3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년~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년~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년~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년~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3)
(2) 676년 2월 당은 평양을 포기하고 압록강 이북 옛 요동성으로 안동도호부를 옯겼다. 그러면 676년 2월에 신라와 당의 경계는 어디일까?
당이 압록강을 건너 그 이북의 최전선은 요동성인데 당나라가 말하는 요동성은 지금의 요양시라고 하고, 이는 압록강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로 약160km인데 여기에 거리왜곡률(1.472)을 곱하면 실제거리는 약 235km이며 이는 약 580리(우리나라 리수)이다. 게다가 압록강과 요양시 사이에는 거의 다 두터운 산악지대로 되어 있다. 즉 당은 신라와 투터운(약 155km) 산악지대와 압록강이라는 2개의 방어선을 경계로 신라와 접경하고자 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압록강에서부터 약 580리에 달하는 투터운 산악지대를 공터로 비워두고 신라와 대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라와 당의 경계선은 최소한 압록강이다. 즉, 676년 2월 현재, 신라와 당의 경계는 최소한 압록강이다.(그 이북일 수도 있음)
3) 그리고 677년 이후에는 안도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겼다. 이것은 676년 11월 신라가 당을 기벌포에서 결국 격파했기 때문에 또다시 북으로 도주한 것이다. 신성은 지금의 무순시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쳐도 무순에서 요양까지 중국 철도거리를 알 수 있는 싸이트에 의하면 115km다. 요양이 요하 바로 남쪽이라면 무순은 요양 동북쪽 115km(약 288리)이다. (중국 도시간 철도거리를 알아볼수 있는 싸이트: http://cafe.daum.net/chinarail)
이때는 요하 남안(南岸)인 요양도 안전하지 못하니 요하 북동쪽 약280리로 옮긴 것이므로 그렇다면 당은 요하를 경계로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는가? 즉, 요하에서 북쪽으로 약 280리의 땅을 비워두고 요하를 경계로 신라와 대치한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677년 2월 이후 신라와 당의 경계선은 요하라고 말할 수 있다.
4)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이진충의 난이 일어남에 따라 발해가 건국이 되었을 때는(698~699년) 신라와 당의 경계가 모호해 졌고, 당 예종 선천 2년(713년)에 발해와 당이 정식 수교함에 따라 714년 신성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평주로 옮김으로서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완전히 없어지게 된 것이다. 714년 이후에는 발해가 신라와 당의 사이에 있었으므로 신라와 당의 경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나당전쟁이 끝나고, 삼국통일을 한 당시에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요하이다. 최종적으로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요하로 끝났고 따라서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요하라고 말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가 요하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는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신라와 당이 경계를 가진 것은 669년부터 714년까지 45년간인데 669년부터 675년 9월까지 7년간은 경계가 압록강 이북, 평양 근처, 평양과 서울사이로 혼란하고 676년 1년간은 압록강이며 677년부터 698년까지 21년간은 요하(또는 그 부근)이고 698년부터 714년까지 16년간은 신라와 당의 경계가 모호하다.(신라와 발해 당나라의 경계가 뒤섞여 있음)
이와같이 45년 중 경계가 뚜렷한 21년간 신라와 당의 경계가 요하(또는 그 부근)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신라와 당의 경계선은 요하(또는 그 부근)리고 말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요하가 신라와 당나라의 최종 경계선이며 이후 지속적으로 가장 오래된 경계선이므로 신라와 당나라의 경계는 요하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는 무슨 근거로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를 경계로」라는 말을 했는가? 더구나 나당전쟁이 끝나 삼국통일을 한 시점에서는 요하(그 부근)가 신라와 당의 경계인데 무슨 근거로 그런 거짓말을 했는가?
이렇게 역사적 근거도 없는 말을 해도 되는가?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되는가? 이러한 거짓말을 우리 학생들에게 뻔뻔스럽게 가르쳐도 되는가?
이런 것이 소위 실증사학이라고 떠들어대는 식민사관의 정체이다. 이렇게 말도 않되는 거짓말이 역사적 사실인양 버젓이 행세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이다.
이것은 지금도 식민사관의 개들이 우리역사를 얼마나 더럽히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역사가 얼마나 엉터리로 알려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역사 교육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보여준다. 아직도 식민사관의 개들이 얼마나 우리 역사를 속이고 거짓말하며 사기를 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얼마나 식민사관에 젖어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5 (0) | 2014.10.17 |
|---|---|
|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4 (0) | 2014.10.15 |
|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2 (0) | 2014.10.10 |
|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1 (0) | 2014.10.08 |
|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0 (0) | 201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