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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1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년~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년~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년~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년~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1)
이제 첫 번째 의문과 그에 대한 답을 알아보자.
이제 이 의문에 충분한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간단하게 답을 해 보자.
이것이 가장 간단한 답이다. 명백하게 신라가 힘으로 당나라를 물리쳤기 때문에 안동도호부가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670년에 고구려 부흥군이 신라군과 연합하여 압록강 이북에서 당군과 전투가 벌어지자 당은 고구려 지역으로 군사를 출동시켰는데 이는 당으로 하여금 동서 양쪽에서 2개의 전쟁을 하게 만들었다. 서쪽에서 당이 대패하자 당은 서쪽을 포기하고 동쪽에서만 5년간 전쟁을 벌렸으나 결과는 고구려 부흥군이 합세한 신라의 대승이었다.
즉, 675년 9월 신라는 바다를 통해 침입한 설인귀를 쳐부수고 이어서 매초성에 있던 이근행의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그 이북으로 전진하여 결과적으로 신라가 18번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한다. 이렇게 평양과 가까운 곳까지 신라가 차지하자 676년 2월 당은 평양을 포기하고 압록강 이북 옛 요동성으로 요동도호부를 옯긴 것이다.
676년 당은 다시 동서 양쪽에서 전쟁을 하지만 결과는 신라가 기벌포에서 결국 또 승리함으로써 677년 2월 당은 안동도호부를 또다시 요동성에서 북쪽 신성으로 옮긴 것이다.
한마디로 신라가 힘으로 두 번씩 당나라를 물리쳤기 때문에 안동도호부가 평양에서 요동성으로 요동성에서 신성으로 옮겨진 것이다. 이렇게 나당전쟁은 신라가 승전국으로 당나라가 패전국으로 결말 지으며 끝이 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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