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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9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년~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년~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년~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년~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2)
677년 2월 보장왕을 조선군왕에 봉하여,안동부로 돌려보내,고구려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면서 안동도호부를 엣 요동성에서 또다시 신성으로 옮긴다. 당나라의 세력이 뚜렷하게 멀리 밀려난 것이다. 그리고 (부여)의자왕의 아들 부여륭을 대방군왕에 봉하여,백제 사람들을 다스리게 한다.
5월에 토번이 부주(扶州)를 공격한 것을 계기로 12월 군사를 관내와 하동에서 대대적으로 모집한데 이어,
678년 1월 이경현을 조하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토번을 정벌하면서 그 달 또다시 하남과 하북의 용감한 병사를 모집하여,토번 정벌에 충당한다. 그러나 9월 이경현과 유심례가 토번과 청해에서 싸웠는데,패하여,유심례가 죽는다.
당이 동쪽으로 포기하고 서쪽에만 군사력을 집중한 까닭은 동쪽은 너무 멀어 급박하지 않기 때문에 간접 통치로 바꾸면서 손을 뗀 것이고, 서쪽은 가깝고 이번에는 국력이 약해져서 급박하게 되었으므로 서쪽에만 군사력을 집중한 것인데도 서쪽에서마저 패하니 당나라는 매우 챙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679년 9월 당이 그동안 죽어지내던 돌궐에게 분풀이 공격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계기로 10월 돌궐이 드디어 일어선다. 돌궐의 아사덕 온부와 아사덕 봉직, 2개의 부(部)가 잇따라 모반을 일으켜,아사나니숙복를 가한으로 세우니,24개 주 수령이 모두 반란을 일으게 된다 가만있는 벌통을 건드린 것이다.
우선 선우대도호에 있는 소사업과 화대지, 이경가 등을 동원해 공격하였으나 패배를 당한다. 이렇게 되니 장군 조회순에게 정형을 지키라 하고,최헌에게 용문을 지키라고 명하여,오히려 돌궐의 공격에 대비하게 한다.
이어서 11월 큰일났다 싶어서,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아,영주도독 주도무 등 병사 18만과,아울러 서군 정무정、동군 이문간 등,총 30만으로 돌궐을 토벌한다. 가만히 있는 돌궐을 괜히 건드려 큰 일을 만든 것이다.
680년 3월,배행검이 돌궐을 흑산에서 대파하고,그 수령 봉직을 사로잡았으며 가한 (아사나)니숙복이 그의 부하에게 살해 당해,머리를 보내고 투항한다.
그러나 7월,이번에는 토번이 하원에 침략하여,양비천에 주둔하니, 이경현이 나서서 싸웠는데 당나라군이 또다시 패배하였다. 그때 흑치상지가 싸워,토번군을 물리쳐 이쪽 전선에서 전투가 겨우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달에,돌궐의 나머지 무리가 운주를 포위하여,중랑장 정무정이 격파하였지만 당으로서는 또다시 두군데서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이번에는 서쪽 전선과 북쪽 전선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력이 부족해 동쪽에서 손을 떼었는데 또다시 두 개의 전쟁을 하게 되었으니 당으로서는 국력이 양분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681년 1월,돌궐이 원주와 경주 등을 침략하자 배행검을 또다시 파견하여,돌궐의 온부 부락을 토벌하도록 하였지만, 5월 정양도 총관 조회순이 돌궐과 횡수에서 싸워 당나라군이 대패한다. 그러나, 윤7월 배행검이 돌궐을 대파하고, 돌궐의 나머지 무리를 전부 평정한다. 이렇게 해서 당이 돌궐을 완전히 평정한 것 같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682년 2월 돌궐의 차박과 인면이 당의 변경을 침략하고 이렇게 되니 4월 당 고종은 장안을 떠나 낙양으로 가고 당나라는 배행검을 또다시 내세워 돌궐의 아사나 차박을 토벌하려고 하지만, 배행검은 떠나기 전에 죽고, 왕방익이 (아사나)차박과 인면을 깨뜨리고,서역을 평정한다. 그래도 돌궐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6월에 이번에는 돌궐의 골돌록이 변경을 침략하여,람주자사 왕덕무를 죽인다. 이어서, 9월 그동안 사태를 지켜보던 토번이 자주와 송주、익주 등을 침구를 시작한다. 당으로서는 완전히 2개의 전쟁터가 구축된 것이다.
12월에는 돌궐의 (아사나)골독록이 병주 북쪽 변경을 침략한다. 이렇게 2개의 전선이 형성되니 당은 이제 돌궐을 토벌하여 승리를 거두지 못함을 볼수 있다 이렇게 되니
683년 2월 돌궐이 정주와 규주를 침구한데 이어 3월 돌궐의 (아사나)골독록과 (아사덕)원진 등이 선우도호부를 포위하여 사마 장행사를 죽인다. 이어서, 5월 돌궐이 울주에 침구하여,자사 이사검을 죽인다. 이렇게 돌궐의 침략이 더해지는 가운데 12월 당 고종은 낙양에서 숨을 거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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