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6

상 상 2014. 9. 24. 17:28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6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8)

고구려 신라(동쪽)

토번 돌궐(서쪽 및 북쪽)

682

 

(영순원년)2월 이달에돌궐의 차박과 인면이 변경을 침구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4월 신미일배행검을 금아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장군 염회단 등 3총관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10개 성()의 가한인 돌궐 아사나차박을 토벌하였다. ()행검은 떠나기 전에 죽었다. 안서부도호 왕방익이 (아사나)차박과 인면을 깨뜨리고서역을 평정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4월 신미일배행검을 금아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3총관병을 거느리고 돌궐을 정벌 하였다. 안서부도호 왕방익이 차박 및 인면과 열해에서 싸워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6월 갑자일돌궐의 골돌록이 변경을 침구하여람주자사 왕덕무가 죽었다. 이달에대규모 메뚜기떼 피해가 일어나사람들이 서로 잡아 먹었다.(신당서 고종본기)

 

9토번이 자주(柘州)에 침구하여효위랑장 이효일이 정벌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이 가을에산동에 홍수가 나서백성들이 굶주렸다. 토번이 자주와 송주익주 등의 주()를 침구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고장(보장왕)이 영순 초(682)에 죽으니, 위위경을 추증하여 힐리(가한)의 묘 왼쪽에 장사하고 비석을 세워 주었다. 예전의 성()들은 왕왕 신라에 편입되었다. 유민(遺民)들은 흩어져 돌궐과 말갈로 달아났다. 이로 말미암아 고씨의 군장(君長)은 모두 끊겼다.

(신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고장이 영순 초(682)에 졸하자 위위경에 추증하였다. 조서를 내려 서울(장안)로 운구케 하여 힐리의 묘 좌측에 장지를 하사하고, ()도 세워 주었다. (구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12돌궐의 나머지 무리 아사나 골독록 등이 잔여 무리를 불러모아흑사성을 근거지로 삼고병주 북쪽 변경을 침략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영순(永淳) 원년(682)(돌궐의) [아사나]골돌록이 또 반란을 일으켰다. [아사나]골돌록은 힐리[가한]의 친척으로 운중도독 사리원영(舍利元英) [휘하] 부락의 추장으로 대대로 토둔(吐屯)을 세습했다. [아사나]복념이 패하자 바로 도망해 흩어진 [부락 백성을] 불러 모아 총재산(總材山)에 숨어서 다시 흑사성을 수리했는데, 백성이 5천 명으로 9(九姓: 철륵 9성의 준말) 의 가축과 말을 도둑질하여 점차 강하고 커지게 되자 바로 스스로 즉위해 가한이 되었고, 동생 묵철(黙啜)을 살(), [다른 동생] 돌실복을 엽호(葉護)로 삼았다. 이 때 선우[도호]부 항호 부락을 검교(檢校) 하던 아사덕원진이 장사 왕본립에게 잡혀 있었다. 마침 [아사나]골돌록이 와서 노략질을 하자 [아사덕]원진이 여러 부락이 돌아가도록 설득함으로써 죄를 대신하겠다고 청하니 [왕본립이] 허락했다. [그런데 아사덕원진은] 가서 [아사나]골돌록에게 항복하고 그와 함께 모의해 마침내 아파달간이 되어 모든 병력을 통솔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우[도호부]의 북부를 노략질하고 마침내 병주까지 공격해 남주자사 왕덕무를 죽이고, [군대를] 나누어 정주를 약탈하자 북평자사 곽왕원이 타격해 물러나게 했다. 또 규주(嬀州)를 공격해 선우도호부를 포위하고 사마 장행사를 죽였으며 울주를 공격해 자사 이사검을 죽이고 풍주도독 최지변을 사로잡았다. [무측천이]조칙을 내려 우무위[]장군 정무정을 선우도안무대사로 삼아 변경을 수비하게 했다.<신당서 돌궐전>

683

 

(영순)22월 경오일돌궐이 정주(定州)와 규주 지경을 침구하였다. 기묘일좌령군위대장군 설인귀가 죽었다.(구당서 고종본기)

 

(홍도원년) 2월 경오일돌궐이 정주를 침구하여자사 곽왕 ()원궤가 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영순2(683)돌궐의 아사나 골돌록이 다시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 골돌록이라는 자는힐리(가한)의 먼 친속으로역시 성이 아사나씨였다. 그 할아버지는 본시 선우 운중도독 사리원영 휘하의 수령이었으며토둔철(관직명)을 세습하였다. 복념이 이미 파멸하자골돌록이 망해 흩어진 무리를을 한곳에 모아총재산에 들어가무리가 떼도둑이 되었는데무리가 5천여명 있었다. 또 아홉개 성()을 폭력을 써서 강제로 빼앗으니얻은 양과 말이 매우 많아져점차 강성하게 되자이에 스스로 가한에 즉위하였으며. 그 동생 묵철을 살로 삼고돌실복을 엽호로 삼았다. 이때 아사덕 원진이란 자가 선우(도호부)에서 항호(降戶) 부락을 임시로 맡고 있었고, 일찍이 한 사건에 연루되어 선우(도호부의) 장사(長史)인 왕본립에게 체포되었는데, 이때 (아사나)골돌록이 침입해 약탈함에 (아사덕)원진이 옛 부락을 맡기를 청하자 ()본립이 허락했으나 바로 (아사나)골돌록에게 투항해버렸다. (아사나)골돌록이 (그를) 얻자 아주 기뻐하며 아파달간으로 삼아 병마(兵馬)의 사무를 전적으로 맡게 했다.

(아사나골돌록이) 울주로 나아가 약탈하자 풍주도독 최지변이 이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적에게 죽임을 당했다.

<구당서 돌궐전>

 

3월 경인일돌궐의 아사나 골독록과 아사덕 원진 등이 선우도호부를 포위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3월 경인일돌궐이 선우도호부에 침구하여사마 장행사가 죽었다.(신당서 고종본기)

 

5월 을사일돌궐이 울주에 침구하여자사 이사검이 죽었다.(신당서 고종본기)

 

11월 무술일우무위장군 정무정을 선우도 안무대사로 삼아돌궐을 정벌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홍도원년) 12월 기유일조서로 영순2년을 홍도원년으로 고치도록 명하였다. 사면령을 쓴 글을 선포하려고황상이 친히 말을 몰아 측천문 누각에 가려고 하였으나뱃속의 기가 꺼꾸로 치밀어 오르는 증상으로 말에 오를수 없게 되자마침내 백성을 궁전 앞에 불러 선포하였다. 예를 마치고황상이 측근 신하에게 물어 이르기를:「서민들이 기뻐하지 아니하는가?」하니 대답하여 이르기를:「백성들이 사면(령의 은혜를) 입었으니감동하여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황상이 이르기를:「창생(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록 기뻐하나나의 생명은 위급하다. 천지신명이 만약 나의 생명을 2개월을 연장해 준다면장안으로 돌아가죽으면 또한 한()이 없겠다.이날 저녁황제가 진관전에서 죽으니연세 56세였다.(구당서 고종본기)

 

12월 정사일연호를 고치고대사면령을 내렸다. 이날 저녁황제가 정관전에서 죽으니연세 56세였다. 시호를 천황대제라고 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