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7

상 상 2014. 9. 26. 17:17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27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6) 동서 요약 연표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를 더욱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 요약한 것임.

고구려 신라(동쪽)

토번 돌궐(서쪽 및 북쪽)

668

평양 함락

 

669

2월 보장왕의 서자 안승이 4천여 호를 거느리고 신라에 투항.

 

 

7월 계필하력을 오해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토욕혼 구원

670

정월, [당나라] 고종이 흠순에게는 귀국을 허락하고 양도(良圖)는 억류하여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이는] (문무)왕이 마음대로 백제의 토지와 백성을 빼앗아 차지하였으므로 황제가 책망하고 노하여 거듭 사신을 억류하였던 것이다.

 

4월 고려 추장 검모잠이 반란을 일으켜변경을 침구하니좌감문위대장군 고간을 동주도 행군총관으로 삼고우령군위대장군 이근행을 연산도 행군총관으로 삼아토벌.

 

44(당나라 군사와) 마주 싸워 신라 군사가 크게 이겨 목베어 죽인 숫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당나라 군사가 계속 이르렀으므로 신라 군사는 물러나 백성(白城)에서 지켰다.

4월 토번이 백주 등 18주를 침구하여 함락또 우전(于闐)과 무리를 합쳐 구자의 발환성을 습격하여함락. 안서 4진을 파함.

 

설인귀를 라사도 행군대총관으로 임명하고, 무리 10여 만을 이끌고 토벌.

6월 고구려 수임성 사람 대형 모잠(牟岑)이 유민들을 모아 궁모성으로부터 패강 남쪽에 이르러 당나라 관리와 승려 법안 등을 죽이고 신라로 향하였다. 서해 사야도에 이르러 고구려 대신 연정토의 아들 ()안승을 만나 한성 안으로 맞아들여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

 

 

7월 설인귀와 곽대봉이 대비천에 도착토번 대장 논흠릉에게 습격당하여대패설인귀 등이 모두 연좌되어 제명당했다.

671

6,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백 명을 목베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았다.

 

7(당나라 장군) 고간이 안시성에서 (고구려의)남은 무리를 깨뜨렸다.

 

9월에 당나라 장군 고간(高侃) 등이 번방의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에 도착하여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아 대방(帶方)을 침입

 

10월 당나라 조운선 70여 척을 공격하여 낭장 겸이대후와 병사 100여 명을 사로잡았는데,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었다.

 

672

7월에 당나라 장수 고간이 군사 1만 명, 이근행이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일시에 평양에 이르러 여덟 곳에 진영을 설치하고 주둔

 

8월에 당나라 군사가 한시성(韓始城)과 마읍성을 공격하여 이기고, 군사를 백수성으로부터 500보쯤 떨어진 곳까지 전진시켜 군영을 설치하였다. 신라 군사와 고구려 군사가 (당나라 군사를)맞아 싸워 수천 명을 목베었다. 고간 등이 후퇴하자 석문(石門)까지 뒤쫓아가 싸웠는데, 신라 군사가 패함

 

12월 고간이 고구려의 남은 무리와 백수산(白水山)에서 싸워 그들을 깨뜨렸다. 신라가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무리를 구원하였으나, 고간이 쳐서 이기고 2천 명을 사로잡았다.

 

이 겨울에고간이 신라의 무리에게 횡수에서 대패

 

673

5월 정묘일연산도총관 이근행이 고구려의 반당을 호로하 서쪽에서 깨뜨리니고려 평양의 남은 무리는 신라로 달아나 들어갔다.

 

9, 당의 군사가 말갈·거란 군사와 함께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왔는데, 무릇 아홉 번 싸워 (신라) 군사가 이겨 2천여 명을 목베었고 당의 군사 중 호로(瓠瀘)와 왕봉(王逢) 두 강에 빠져 죽은 자는 이루 셀 수 없었다.

 

674

2월 유인궤를 계림도 대총관으로 삼아

신라 토벌

 

675

2, []인궤가 칠중성에서 그들(신라 군사)을 쳐부수고, 말갈병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서 남쪽 지역을 공략하니, 목을 베고 또 사로잡은 포로가 매우 많았다. 조서로 이근행을 안동진무대사로 삼아 매초성에 주둔시키니, 세 번 싸워서 오랑캐(신라)가 모두 패배하였다. ()법민(문무왕)이 사신을 보내 입조하여 사죄를 하는데, 공물의 짐바리가 줄을 이었다. ()인문 또한 [신라에서] 돌아와 왕위를 내놓으므로, 조서로 ()법민(문무왕)의 관작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신라는] 백제의 땅을 많이 차지하고, 드디어는 고구려의 남부까지 점령하였다. 상주· 양주(良州강주· 웅주· 전주· 무주· 한주· 삭주· 명주)9()를 설치하고, ()에는 도독(都督)을 두어 10() 내지 20()을 통솔하게 하였다. ()에는 태수를, ()에는 소수(小守)를 두었다.

 

9, 설인귀가 천성(泉城)에 쳐들어 옴.

신라 장군 문훈 등이 맞아 싸워 이겨서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감

 

29일에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주둔하였는데,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쫓아내고, 30,380필을 얻었으며 그 밖의 병기도 이만큼 되었다.

 

또 신라 군사가 당나라 군사와 열여덟 번의 크고 작은 싸움에서 모두 이겨서 6,047명을 목베고 말 200필을 얻음.

 

676

2월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겼다.

 

 

3월 토번이 선주곽주하주방주 등 4개 주() 침략. 주왕(周王) ()현을 조주도 행군원수로 삼고공부상서 유심례 등 12명의 총관을 거느리며

상왕(相王) ()륜을 양주도 행군원수로 삼고

좌위장군 계필하력 등의 군대를 거느리게 하여

토번을 토벌하였다. 두 왕은 결국 가지 않았다.

7월 당나라 군사가 도림성을 공격해와 함락시킴.

 

 

8토번이 첩주(疊州)로 진격 밀공, 단령 2()을 격파 다시 부주(扶州)를 공격하여 격파.

이에 유인궤를 조하진수사(洮河鎮守使)로 삼았으나 오랫동안 전공이 없었다.

11, 사찬 시득이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싸우다가 크게 패하였다.

다시 나아가 크고 작은 22회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4천여 명을 목베었다.

677

2월 고장(보장왕)에게 요동도독을 제수하고조선군왕에 봉하여안동부로 돌려보내고구려의 나머지 무리를 편안하게 함.

또다시(거듭) 안동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겨 다스렸다.

 

 

5월 토번이 부주(扶州) 침구.

678

 

1월 이경현을 조하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토번 정벌. 하남과 하북의 용감한 병사를 모집하여토번 정벌.

9월 이경현과 유심례가 토번과 청해에서 싸워 패하고

유심례가 죽음.

679

 

9월 임오일이부시랑 배행검이 서쪽으로 돌궐을 토벌하여10()의 가한(임금)인 아사나 도지와 별수(別帥:별도의 장수) 이차복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10(아사덕)온부와 (아사덕)봉직의 2개 부()가 잇따라 모반을 일으켜(아사나)니숙복를 가한으로 세우니(돌궐의)24개 주 수령이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11월 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아 30만으로 돌궐 토벌

680

 

3월 배행검이 돌궐을 흑산에서 대파, 수령 봉직을 사로잡음

7월 토번이 하원에 침구하여양비천에 주둔. 이경현과 토번 장군 찬파가 황중에서 싸웠으나당나라군이 패배 흑치상지가 온 힘을 다하여 싸워토번군을 대파마침내 하원군 경략대사에 발탁이경현에게

선주(鄯州)를 진압하라고 명하고지원함.

돌궐의 나머지 무리가 운주를 포위 중랑장 정무정이 격파

681

 

1월 돌궐이 원주와 경주 등의 주()를 침구. 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아 돌궐의 온부 부락 토벌

5월 정양도 총관 조회순이 돌궐의 사복념과 횡수에서

싸웠으나당군이 대패

9월 배행검이 돌궐의 온부 가한과 아사나 복념을 사로잡음

10(아사나)복념과 온부 등 54명을 도회지 시장에서 참수

682

 

2월 돌궐의 (아사나)차박과 인면이 변경 침구

4월 배행검을 금아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 차박 토벌. 배행검은 떠나기전에 죽음. 안서부도호 왕방익, (아사나)차박과 인면을 깨뜨리고서역 평정.

6월 돌궐의 골돌록이 변경 침구람주자사 왕덕무가 죽음.

9월 토번 자주(柘州)에 침구효위랑장 이효일이 정벌.

12(아사나)골독록이 병주 북쪽 변경 침략.

683

 

2월 돌궐이 정주 침구자사 곽왕 ()원궤가 패배시킴.

3월 돌궐의 (아사나)골독록 등이 선우도호부 포위.

5월 돌궐이 울주에 침구자사 이사검이 죽음.

11월 정무정을 선우도 안무대사로 삼아돌궐 정벌.

12월 당 고종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