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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7월,토번이 하원에 침구하여,양비천에 주둔하였다. 하서 진무대사 이경현과 토번 장군 찬파가 황중에서 싸웠으나,관군(당나라군)이 패배하였다. 그때 좌무위장군 흑치상지가 온 힘을 다하여 싸워,토번군을 대파해,마침내 하원군 경략대사에 발탁되어;이경현에게 선주(鄯州)를 진압하라고 명하고,지원하였다.
이달에,돌궐의 나머지 무리가 운주를 포위하여,중랑장 정무정이 격파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영륭원년) 7월 기묘일,토번이 하원을 침구하였다. 신사일,이경현이 토번과 황천에서 싸웠으나,패배하였다. 좌무위장군 흑치상지를 하원군 경략대사로 삼았다.
병신일,돌궐이 운주를 침구하여,도독 두회철이 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그 이듬해(680년) 찬파(贊婆)와 소화귀가 군대 3만을 이끌고 하원(河源)을 공격하고 양비천(良非川)에 주둔하니, (이)경현(敬玄)이 이들과 황천(湟川: 청해성 서녕 부근의 황수)에서 교전했으나 대패했다. 좌무위장군 흑치상지가 정예병 3천으로 토번의 군영을 야습하니 찬파가 두려워하여 철군했다. 이에 흑치상지를 하원군경략대사로 삼았다. 이에 더욱 엄히 경계를 서고 둔전을 개간하니 토번의 모략이 점차 꺾였다. 당초 검남(劍南: 대개 오늘날의 사천성)을 지나 무주(茂州: 사천성 무현 일대)의 서쪽에 안융성(安戎城: 사천성 무현의 서남에 위치)을 쌓아 토번의 변경을 위협하려 했다. 갑자기 생강(生羌)이 토번을 인도하여 이를 빼앗고 지키니 이로 인하여 서이하(西洱河: 운남성 대리의 서쪽 하원현에서 발원하여 양비강과 합류)의 여러 오랑캐를 병탐하고 양동(羊同)과 당항(党項)의 여러 강족을 모두 신하로 삼았다. 그 땅은 동쪽으로는 송주(松), 무주(茂), 휴주(巂)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파라문(婆羅門)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4진(鎮)을 취하고 북쪽으로는 돌궐에 이르러 그 넓이가 만여 리에 이르니 그 강성함은 한(漢)과 위(魏) 때의 여러 (서)융(戎) 중에도 없는 바였다.
영륭 원년(680) 문성공주가 죽자 사자를 보내 조문하게 했고 토번은 우리나라(당나라) 진행언(陳行焉)의 유해를 돌려보냈다. 당초 (진)행언은 토번에 사신으로 갔다가 논흠릉이 자신에게 절하게 하려고 군대를 열병시켜 위협하였으나 굴복하지 않아 10년 간 억류되었다. 이때 유해가 돌아오자 목주자사에 추증했다. 찬파(贊婆)가 다시 양비천에 침입하자, 흑치상지가 이를 격퇴하여 쫓아버렸다.<이상 신당서 토번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