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6(끝)

상 상 2014. 10. 20. 17:51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36()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2

 

끝으로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고구려 부흥군이 일어나자 거의 동시에 신라군이 합세하였다는 점이다.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군이 거의 동시에 함께 당나라군과 싸웠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

 

이것은 작게 말해서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고구려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며, 크게는 (당연한 말이지만) 고구려와 신라가 하나의 민족임을 증명한 것이다.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고구려가 망했다면 고구려 사람들이 신라와 한편이 되겠는가?

고구려를 망하게 한 원수와 손을 잡겠는가 그 말이다.

 

아무리 한 형제라도 자기를 멸망시키면 원수가 되는 것이지 한편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가 한편이 되어 당과 싸웠다는 사실은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 세 형제의 내분과 당나라가 그것을 이용 연남생을 앞장세워

고구려에 침략한 것에 있다는 사실이다.

고구려 멸망원인이 신라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고구려 멸망의 원인이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부흥군이 신라와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하나, 고구려 부흥군이 신라군과 한편이 되어 당나라 군과 싸운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지만 국가도 집안이 망하면 자기와 제일 가까운 핏줄에게 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구려 부흥군은 신라군과 손잡고 당나라군과 싸운 것이며 평양에서 고구려 부흥군과 당나라 군이 싸워 패하게 되자 평양의 패잔병들은 다시 군열을 정비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어울려 신라로 망명한 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하건데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에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점은 두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는 고구려의 멸망원인이 내분과 당나라에 있지 신라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려와 신라가 한 핏줄, 한 민족이라는 점이다.

그 증거가 바로 고구려 부흥군과 신라가 거의 동시에 한편이 되어 싸웠고

고구려 부흥군이 패하자 신라로 망명했다는 점이다

이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