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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4월 4일 (당나라 군사와) 마주 싸워 우리(신라와 고구려 부흥군) 군사가 크게 이겨 목베어 죽인 숫자를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당나라 군사가 계속 이르렀으므로 우리 군사는 물러나 백성(白城)에서 지켰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함형(咸亨) 원년 경오년(670) 여름 4월에 이르러 검모잠이 나라를 부흥하려고 당나라에 배반하고, 보장왕의 외손 안순(安舜:안승)을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 당나라 고종이 대장군 고간을 보내 동주도 행군총관으로 삼아 군사를 내어 그들을 토벌하니, 안순은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삼국사기 고구려 부흥운동>
고구려의 대장 겸모잠(鉗牟岑)이 무리를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켜 고장(보장왕)의 외손 안순을
세워 왕으로 삼았다. 고간을 동주도 행군총관으로 삼고, 이근행을 연산도 행군총관으로 삼아
토벌케 하였다. 사평태상백 양방을 보내어 도망치고 남은 무리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안순이 겸모잠(鉗牟岑)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고간은 도호부의 치소를 요동주(遼東州)로 옮기고, 반란군을 안시성에서 격파하고, 또 천산(泉山)에서 쳐부수고 신라의 원병(援兵) 2천명을 사로잡았다. 이근행은 그들을 발로하에서 쳐부수고, 다시 싸워서 포로와 참수한 수가 1만에 이르렀다. 이에 평양의 패잔병들은 다시 군열을 정비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어울려 신라로 망명하였다. 그리하여 무려 4년만에 평정되었다. <신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여름 4월,토번이 백주 등 18주를 침구하여 함락시켰으며,또 우전(于闐)과 무리를 합쳐 구자의 발환성을 습격하여,함락하였다. 안서 4진을 파하였다.
신해일,우위위대장군 설인귀를 라사도 행군대총관으로 삼고,우위원외대장군 아사나 도진과 좌위장군 곽대봉을 부(총관)으로 삼아, 병사 5만을 거느리고 토번을 쳤다.<구당서 고종본기>
함형 원년 4월 계묘일,토번이 구자의 발환성을 함락하였다. 안서 4진을 폐지하였다.
신해일,우위위대장군 설인귀를 라사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토번을 토벌하였다.
경오일,고려 추장 검모잠이 반란을 일으켜,변경을 침구하니,좌감문위대장군 고간을 동주도 행군총관으로 삼고,우령군위대장군 이근행을 연산도 행군총관으로 삼아,토벌하였다.
<신당서 고종본기>
함형 원년(670) 4월 우위위대장군 설인귀를 라사도 행군대총관으로 임명하고, 좌위원외대장군 아사나 도진과 우위장군 곽대봉을 부장으로 삼아 무리 10여 만을 이끌고 토벌하게 했다. 군대가 대비천(大非川)에 이르렀을 때, 토번의 대장 논흠릉에게 패배하여, (설)인귀 등은 모두 죄를 물어 제명되었다.<구당서 토번전>
함형 원년(670)에 [토번이] 기미(羈縻)한 18주(州)를 침략했는데, 우전(于闐)을 이끌고 와서 구자 발환성을 공격하여 취하니 이때 안서(安西) 4진(鎮)이 모두 없어졌다.
조서를 내려 우위위대장군 설인귀를 라사도행군대총관으로 삼고, 좌위원외대장군 아사나도진과 좌위장군 곽대봉을 부관으로 삼아 출병하여 토번을 토벌하고 아울러 토욕혼을 호송하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군대가 대략 십여 만이었는데 대비천(大非川)에 이르러 흠릉에게 공격을 받아 천자의 군대가 크게 패했다. [흠릉은] 드디어 토욕혼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모두 차지했다. <신당서 토번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