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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
2 |
(의봉)2년 2월 정사일,공부상서 고장(보장왕)에게 요동도독을 제수하고,조선군왕에 봉하여,안동부로 돌려보내,고구려의 나머지 무리를 편안하게 하고;사농경 부여륭에게 웅진주도독을 제수하고,대방군왕에 봉하여,가서 백제의 나머지 무리를 편안하게 하도록 명하였다.
또다시(거듭) 안동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겨 다스렸다.(구당서 고종본기)
의봉 2년(.677년) 고장(보장왕)에게 요동도독을 제수하고, 조선군왕에 봉하여 요동에 돌아가 남은 백성을 안무케 하였다. 이에 앞서 내주(內州)에 편입되어 있던 교민(僑民)을 모두 용서하여 돌려 보내고, 안동도호부를 신성으로 옮겼다. 고장이 말갈과 반란을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었다. 소환하여 공주(邛州)로 추방하고, 나머지 교민들은 하남과 농우로 옮겼다. 노약하고 빈곤한 자는 안동에 머물러 두었다. (신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의봉 연간(676∼678년) (당)고종은 고장에게 개부의동삼사 요동제독을 제수하고 조선왕에
봉하여, 안동에서 살며 본번(本蕃)을 진무하는 군주(主)로 삼았다.
고장은 안동에 이르러서 몰래 말갈과 서로 통하여 모반을 꾀하였다.
일이 발각되자, 소환하여 공주로 유배시켰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남·농우의 여러 주(州)에 분산하여 옮겼는데, 그 가운데 빈약한 자는 안동성(安東城) 부근에 머물러 살게 하였다.
(구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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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
5 |
(의봉)2년 5월,토번이 부주(扶州)를 침구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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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12월 을묘일,칙명으로 관내와 하동의 모든 주(州)에서 용감한 자를 불러모아,토번을 토벌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12월 을묘일,관내와 하동의 용사를 모집하여,토번을 토벌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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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에,서돌궐과 토번이 안서를 침구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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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
1 |
(의봉)3년 정월 병자일,이경현을 조하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토번을 정벌하였다. 계미일,
사신을 보내 하남과 하북의 용감한 병사를 모집하여,토번을 정벌 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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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병인일,이경현과 유심례가 토번과 청해에서 싸웠는데,패하여,(유)심례가 죽었다.
(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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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
2 |
(의봉) 4년 2월 임술일,토번의 찬보(군주)가 죽어,사신을 보내 조문하고 제를 올렸다.
(구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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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조로 원년) 6월 신해일,황제가 대사면령을 천하에 내리고,의봉4년을 조로원년으로 고쳤다.
<구당서 고종본기>
(조로원년) 6월 신해일,대사면령을 내리고,연호를 고쳤다.
이부시랑 배행검이 서돌궐을 정벌 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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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9월 임오일,이부시랑 배행검이 서돌궐을 토벌하여,그 10개 성(姓)의 가한(임금)인
아사나 도지와 별수(別帥:별도의 장수) 이차복을 사로잡아 돌아왔다.(구당서 고종본기)
9월 임오일,(배)행검이 서돌궐을 패배시키고,그 가한 도지를 잡았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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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겨울 10월,선우대도호부의 돌궐(족) 아사덕 온부와 봉직, 2개의 부(部)가 잇따라 모반을 일으켜,아사나 니숙복를 가한으로 세우니,24개 주 수령이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선우대도호 장사 소사업을 보내고,장군 화대지와 이경가 등이 토벌하였다. 돌궐과 싸움을 하였으나,적에게 패배를 당하였다. (소)사업을 계주로 유배 보냈다. 임자일,장군 조회순에게 병사를 인솔하고 긍주로 가서 정형을 지키라 하고,최헌에게 강주로 가서 용문을 지키라고 명하여,돌궐에 대비하게 하였다. 계해일,토번(에 있는) 문성공주가 그 대신 론새조방을 보내 와서 부고를 알리고,화친을 청하였으나,불허 하였다. 낭장 송령문을 토번에 사신으로 보내,찬보(토번의 임금)의 장례에 참석하게 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10월,돌궐의 온부와 봉직 2개의 부(部)가 변경을 침구하여,선우대도호부 장사 소사업이 정벌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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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11월 갑진일,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아,영주도독 주도무 등 병사 18만과,아울러 서군 정무정、동군 이문간 등,총 30만으로 돌궐을 토벌하였다. (구당서 고종본기)
11월 갑진일,예부상서 배행검을 정양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돌궐을 정벌하였다.
(신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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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
2 |
(조로)2년 2월 임자일,곽왕 (이)원궤가 문무백관을 인솔하고,일개월 간의 녹봉을 내어 군사 돕기를 청하여,돌궐을 토벌하였다. (구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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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3월,배행검이 돌궐을 흑산에서 대파하고,그 수령 봉직을 사로잡았다. 거짓 가한 (아사나)니숙복이 그의 부하에게 살해 당해,머리를 보내고 투항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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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문무왕 20년(680) 여름 5월에 고구려 왕이 대장군 연무(延武) 등을 보내 표(表)를 올려 말하였다.
『신(臣) 안승은 말씀을 올립니다. 대아찬 김관장(金官長)이 이르러 교지를 받들어 선포하고 아울러 교서를 내려, 생질로써 저의 안주인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윽고 4월 15일에 이곳에 이르렀으니 기쁨과 두려움이 마음속에 엇갈려 어찌한 바를 모르겠습니다. 생각컨대 요임금은 딸을 규(嬀)에게 시집보내고 주(周)의 왕은 공주를 제(齊)나라에 시집보낸 것은 본래 신성한 덕을 드러내어 평범한 사람이라도 관계치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신은 원래 용렬한 부류로 행동과 재능이 이렇다할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좋은 운수를 만나 성인의 교화에 젖게 되었고 매번 특별한 은택을 받았으니, 은혜를 갚고자 해도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거듭 대왕의 총애를 입어 대왕의 인척을 내려주었습니다. 마침내 무성한 꽃이 경사를 표하고 정숙하고 화목한 덕을 갖추어 좋은 달 좋은 때에 저의 집에 시집온다고 하니, 억년(億年)에 만나기 힘든 행운을 하루 아침에 얻었습니다. 처음에 바라지 못했던 일이고 뜻밖의 기쁨입니다. 어찌 한두 사람의 부형(父兄)만이 실로 그러한 이 은혜를 받겠습니까? 선조 이하가 다 기뻐할 일인 것입니다. 저는 아직 교지를 받지 못하여 직접 찾아 뵙지 못하지만 지극한 기쁨을 어찌할 수 없어 삼가
대장군 태대형 연무를 보내 표(表)를 올려 아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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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가을 7월,토번이 하원에 침구하여,양비천에 주둔하였다. 하서 진무대사 이경현과 토번 장군 찬파가 황중에서 싸웠으나,관군(당나라군)이 패배하였다. 그때 좌무위장군 흑치상지가 온 힘을 다하여 싸워,토번군을 대파해,마침내 하원군 경략대사에 발탁되어;이경현에게 선주(鄯州)를 진압하라고 명하고,지원하였다. 이달에,돌궐의 나머지 무리가 운주를 포위하여,중랑장 정무정이 격파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영륭원년) 7월 기묘일,토번이 하원을 침구하였다. 신사일,이경현이 토번과 황천에서 싸웠으나,패배하였다. 좌무위장군 흑치상지를 하원군 경략대사로 삼았다. 병신일,강왕 원상이 죽었다. 돌궐이 운주를 침구하여,도독 두회철이 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