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14

상 상 2014. 8. 22. 18:10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14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4) 연표(4)

기 사

681

1

문무왕 21(681) 봄 정월 초하루 사찬 무선(武仙)이 정예군사 3천 명을 이끌고 비열홀을 지켰다.(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영륭) 2(681) 봄 정월돌궐이 원주와 경주 등의 주()를 침구하였다. 계사일예부상서 배행검을 정양도 대총관으로 삼고 파견하여군사를 거느리고 돌궐의 온부 부락을 토벌하도록 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개요원년) 정월 을해일돌궐이 원주와 경주의 2개 주()를 침구하였다. 계사일배행검을

정양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돌궐을 정벌 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5

5월 병술일정양도 총관 조회순이 돌궐의 사복념과 횡수에서 싸웠으나관군(당나라군)

대패하였다. ()회순을 죽이지 않고영남으로 유배 보냈다.(구당서 고종본기)

 

5월 을유일(중국)상주 사람 유룡자가 모반하여목을 베어 죽였다. 병술일정양도부총관

조회순이 돌궐과 횡수에서 싸워패배하였다. 기축일흑치상지가 토번과 양비천에서 싸워

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7

문무왕 21(681) 가을 71일에 (문무)왕이 죽었다.

시호를 문무(文武)라 하고 여러 신하들이 유언에 따라 동해 어구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

 

7월 이달에배행검이 돌궐의 사복념 무리를 대파하고()복념은 정무정이 급히 추격하니마침내 (사복념이) 온부를 잡아 투항하였으며()행검이 이에 돌궐의 나머지 무리를 전부 평정하였다. ()행검이 ()복념과 온부를 잡아군대를 거두어 개선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7월 경신일배행검이 돌궐과 싸워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9

9월 임술일배행검이 돌궐의 온부 가한과 아사나 복념을 사로잡아 바쳤다. 을축일연호를

고치고정양군()과 여러 도()에서 연정관리의 병사 모집 잘못을 사면하였다.

(신당서 고종본기)

10

(개요원년) 겨울 10월 병인일-초하루일식이 있었다. 을축일영륭2년을 개요원년으로 고쳤다. 병인일아사나 복념과 온부 등 54명을 도회지 시장에서 참수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682

2

(영순원년)2월 계미일()손 중조가 만월을 낳아대사면령을 내리고연호를 고쳤으며잔치 3일을 하사 하였다. 이달에돌궐의 차박과 인면이 변경을 침구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4

4월 병인일(황제가) 동도(낙양)에 행차하였다. 황태자에게 서울(장안)에 머물러 지키게 하며유인궤배염설원초 등으로 하여금 보좌하도록 명하였다. 황상은 곡식이 귀하니뒤따르는 병사를 줄였으나사대부와 서민으로 따라온 자는 길에서 굶어죽어 넘어진 자들이 많았다.

신미일배행검을 금아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장군 염회단 등 3총관병과 함께 길을 나누어 10개 성()의 가한인 돌궐 아사나 차박을 토벌하였다. ()행검은 떠나기 전에 죽었다. 안서부도호 왕방익이 (아사나)차박과 인면을 깨뜨리고서역을 평정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4월 신미일배행검을 금아도 행군대총관으로 삼아3총관병을 거느리고 돌궐을 정벌 하였다. 안서부도호 왕방익이 차박 및 인면과 열해에서 싸워패배시켰다.(신당서 고종본기)

6

6월 갑자일돌궐의 골돌록이 변경을 침구하여람주자사 왕덕무를 죽였다. 이달에대규모 메뚜기떼 피해가 일어나사람들이 서로 잡아 먹었다.(신당서 고종본기)

9

9토번이 자주(柘州)에 침구하여효위랑장 이효일이 정벌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

 

이 가을에산동에 홍수가 나서백성들이 굶주렸다. 토번이 자주와 송주익주 등의 주()를 침구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12

12남천축과 우전이 각각 지방물건을 바쳤다. 돌궐의 나머지 무리 아사나 골독록 등이 잔여 무리를 불러모아흑사성을 근거지로 삼고병주 북쪽 변경을 침략하였다.(구당서 고종본기)

 

고장(보장왕)이 영순 초(682)에 죽으니, 위위경을 추증하여 힐리(가한)의 묘 왼쪽에 장사하고 비석을 세워 주었다. 예전의 성()들은 왕왕 신라에 편입되었다. 유민(遺民)들은 흩어져 돌궐과 말갈로 달아났다. 이로 말미암아 고씨의 군장(君長)은 모두 끊겼다.

(신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고장이 영순 초(682)에 졸하자 위위경에 추증하였다. 조서를 내려 서울(장안)로 운구케 하여 힐리의 묘 좌측에 장지를 하사하고, ()도 세워 주었다. (구당서 동이열전 고구려편)

683

2

(영순)22월 경오일돌궐이 정주(定州)와 규주 지경을 침구하였다.

기묘일좌령군위대장군 설인귀가 죽었다.(구당서 고종본기)

 

(홍도원년) 2월 경오일돌궐이 정주를 침구하여자사 곽왕 ()원궤가 패배시켰다.

(신당서 고종본기)

3

3월 경인일돌궐의 아사나 골독록과 아사덕 원진 등이 선우도호부를 포위하였다.

(구당서 고종본기)

 

3월 경인일돌궐이 선우도호부에 침구하여사마 장행사를 죽였다.(신당서 고종본기)

5

5월 을사일돌궐이 울주에 침구하여자사 이사검을 죽였다.(신당서 고종본기)

11

11월 무술일우무위장군 정무정을 선우도 안무대사로 삼아돌궐을 정벌하였다.

(신당서 고종본기)

12

(홍도원년) 12월 기유일조서로 영순2년을 홍도원년으로 고치도록 명하였다. 사면령을 쓴 글을 선포하려고황상이 친히 말을 몰아 측천문 누각에 가려고 하였으나뱃속의 기가 꺼꾸로 치밀어 오르는 증상으로 말에 오를수 없게 되자마침내 백성을 궁전 앞에 불러 선포하였다. 예를 마치고황상이 측근 신하에게 물어 이르기를:「서민들이 기뻐하지 아니하는가?」하니 대답하여 이르기를:「백성들이 사면(령의 은혜를) 입었으니감동하여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였다. 황상이 이르기를:「창생(세상의 모든 사람)이 비록 기뻐하나나의 생명은 위급하다. 천지신명이 만약 나의 생명을 2개월을 연장해 준다면장안으로 돌아가죽으면 또한 한()이 없겠다.이날 저녁황제가 진관전에서 죽으니연세 56세였다.(구당서 고종본기)

 

12월 정사일연호를 고치고대사면령을 내렸다. 이날 저녁황제가 정관전에서 죽으니연세 56세였다. 시호를 천황대제라고 하였다.(신당서 고종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