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7

상 상 2014. 8. 4. 17:52

고구려 부흥운동과 나당전쟁-7

 

차례

1) 구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2) 신당서 고종 본기(668~고종 사망까지)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668~문무왕 사망까지)

4) 연표(668~고종 사망까지)

5) 동서 양쪽으로 분리한 연표

6) 동서 요약 연표

7) 동서 요약 연표 해설

8) 요약

9) 안동도호부가 옮겨지는 까닭

10) 신라와 당나라 전쟁의 결말

 

 

 

3)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 본기(3)

(문무왕) 11(671) 봄 정월에 이찬 예원(禮元)을 중시로 삼았다.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침공하여 웅진 남쪽에서 싸웠는데, 당주(幢主) 부과(夫果)가 죽었다. 말갈 군사가 쳐들어와 설구성(舌口城)을 포위하였다가 이기지 못하고 장차 물러가려 하자, 군사를 내어 쳐서 300여 명을 목베어 죽였다.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구원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대아찬 진공(眞功아찬 △△△△ 등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옹포(甕浦)를 지키게 하였다. 흰 물고기가 [원문 10자 결락] 뛰어들었는데 한 치()였다. 여름 4월에 흥륜사 남문에 벼락이 쳤다. 6월에 장군 죽지(竹旨) 등을 보내 군사를 이끌고 백제 가림성(加林城)의 벼를 짓밟게 하였다.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백 명을 목베고 백제 장군 두 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여섯 명을 사로잡았다.

 

가을 726일에 당나라 총관 설인귀(薛仁貴)가 임윤법사(琳潤法師)를 시켜 편지를 보내왔다.

 

행군총관(行軍總管) 설인귀(薛仁貴)는 신라 왕께 글월을 드립니다. 맑은 바람 만리 길, 큰 바다 삼천리에 황제의 명령을 받고 결정할 일이 있어 이 땅에 왔습니다. 삼가 듣건대 [왕께서는] 바르지 못한 마음을 조금 움직여서 변경의 성들에 무력(武力)을 쓴다고 하니, [이는] 중유(仲由)의 한마디 말을 저버린 것이요, 후생(侯生)의 한번 승락을 잃으신 것입니다. 형은 역적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우는 충신이 되어 꽃과 꽃받침의 그늘이 크게 벌어지고 서로 그리워하는 달이 헛되이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저런 것을 생각하면 실로 한숨과 탄식만 더할 뿐입니다. 선왕(先王) 개부(開府)께서는 한 나라의 다스림을 궁리하시고 나라 안 각 지역의 일들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서쪽으로는 백제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의 노략질을 경계하였는데, 나라 안 천리 땅 곳곳에서 전쟁이 있어 누에치는 아낙네는 제때에 뽕잎을 따지 못하고 농사짓는 농부는 밭 갈 시기를 잃었습니다. [이에 선왕께서는] 나이가 예순[耳順]이 거의 되어 해가 저무는 것 같은 만년[楡景]임에도 불구하고 배타고 바다 건너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멀리 양후(陽侯)의 험한 풍파를 건너 마음을 중국 땅에 쏟았습니다. 천자가 계신 대궐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신라의] 외롭고 약함을 모두 진술하였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침략을 명확하게 말하여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모두 드러내니 듣는 사람이 슬픔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는 기개가 천하에서 으뜸가고 정신은 우주에 군림하니, 반고(盤古)가 아홉 번 변화하고 거령(巨靈)이 손바닥을 한번 씀과 같았습니다. 쓰러지는 자를 붙들어 세우고 약한 사람을 구원하기에 날마다 겨를이 없어, 선왕을 애처롭게 여겨 맞아들이고 그 청한 바를 가엾게 생각하여 받아들였으며, 가벼운 수레와 날쌘 말[駿馬], 아름다운 옷과 좋은 약을 주고 하루 동안에도 여러 번 만나 특별한 총애로 대우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은혜를 입고서 군사에 관하여 말하니 그 뜻맞음이 물고기가 물을 만남과 같았고, 쇠와 돌에 새긴 것보다 분명하였습니다. 봉황 자물쇠 1천 겹과 학 대문[鶴關] 1만 호()되는 깊은 궁궐에서 여러 날 머물며 술을 마시고 담소하면서 금빛으로 빛나는 대궐의 계단에서 군사 문제를 함께 의논하여, 기일을 정하여 응원하기로 하고 하루 아침에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 때는 변방의 풀에 꽃이 피고 느릅나무에 새 열매가 맺혔습니다. [지난 번] 황제께서 직접 참여하신 전투 때에는 문제(文帝)께서 몸소 나가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불쌍한 사람을 진휼하였으니 [이는] 의로움이 깊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얼마 후 산과 바다가 모양을 바꾸고 해와 달이 빛을 잃은 후 성인(聖人)께서 계승하셨고[下武] 왕께서도 또한 가업(家業)을 잇게 되었습니다. 서로 바위와 칡처럼 얽혀 의지하여 토벌의 군사를 함께 일으켜 무기를 손질하고 말을 훈련시켰으니, 이는 모두 선인(先人)들의 뜻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 중국은 피로하였으나, 천자의 곳간을 때때로 열어 곡식과 말먹이 풀을 급히 날라 날마다 대주었습니다. 조그만 신라 땅을 위하여 중국의 군사를 일으킴에, 이익됨이 적고 쓸모없는 데 애쓰게 되었으니 어찌 그칠 줄을 몰랐겠습니까마는 다만 선군(先君)의 신의를 잃을까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강한 적은 이미 없어졌고 원수들은 나라를 잃게 되어 군사와 말과 재물을 왕이 또한 갖게 되었으니, 마땅히 마음과 힘을 다른 데에 돌리지 말고, 안과 바깥이 서로 의지하여 병기를 녹이고 허술한 나라 안 다스리는데 마음을 두어 자연스럽게 그 좋은 방책을 후손에게 전해 주고 자손을 현명하게 도와주면, 훌륭한 역사가가 이를 칭찬할 것이니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지금 왕께서는 편안히 할 수 있는 기틀을 버리고 떳떳한 정책 지키기를 꺼리어, 멀리는 천자의 명을 어기고 가깝게는 아버지의 말씀을 저버리고서 천시(天時)를 마음대로 업신여기고 이웃 나라와의 우호를 속이고 어기면서 한쪽 모퉁이 땅 구석진 나라에서 집집마다 군사를 징발하고 해마다 무기를 들어, 과부들이 군량의 수레를 끌고 어린 아이가 둔전(屯田)을 경작하기에 이르렀으니 지키려 해도 버틸 수 없고 나아가려 해도 당해내지 못합니다. 얻은 것으로써 잃은 것을 보충하고 있는 것으로써 없어진 것을 채우려 하였으나 크고 작음이 같지 않고 순리와 역리가 뒤바뀌었으니, 활을 당겨 나아가면서 발 앞의 마른 우물에 빠질 줄을 모르고 버마재비가 매미를 잡으려고 나아가면서 참새가 자기를 노리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계십니다.선왕께서는 살아 계실 때 일찍이 천자의 돌보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품고서 거짓으로 정성스런 예절을 나타내어 자신의 사욕(私欲)을 이루려 하고, 천자의 지극한 공적을 탐하여 앞에서는 구차하게 은혜를 바라고 뒤에 가서 반역을 도모한다면, 이는 선왕을 받드는 것이 아닙니다. 황하의 물이 띠처럼 될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다는 서약을 지키고 의리와 분수를 서리처럼 엄하게 지켰어야 하는데, 임금의 명을 어기었으니 불충(不忠)이요 아비의 마음을 져버렸으니 불효(不孝)이니, 한 몸에 이 두 가지 불명예를 쓰고서 어찌 스스로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왕의 부자(父子)가 하루 아침에 떨쳐 일어서게 된 것은 모두 천자의 마음씀이 멀리까지 미치고 위엄과 힘이 서로 도와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와 군()이 연이어 혼란스러워지자, 이로부터 거듭 책명을 받아 신하라 칭하고 꿇어앉아 경서(經書)를 읽고 시()와 예()를 익혔습니다. 의리를 듣고도 따르지 않고 선()을 보고도 가볍게 느끼며, 권모술수의 말[縱橫之說]을 듣고 눈과 귀를 번거롭게 하면 높은 가문의 기틀을 소홀히 하게 되고 귀신들이 엿보는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선왕의 뛰어난 위업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딴 생각을 품고, 안으로는 의심스러운 신하를 죽이고 밖으로는 강한 군대를 불러들였으니 어찌 지혜롭다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고구려 안승(安勝)은 나이 아직 어리고 남아 있는 고을과 성읍에는 사람이 반으로 줄어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 지 의구심을 품고 나라를 맡을 중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귀(仁貴)는 누선(樓船)에 돛을 활짝 펴서 달고 깃발을 휘날리며 북쪽 해안을 순시할 때 그가 지난 날 활에 상한 새의 신세가 된 것을 불쌍히 여겨 차마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를 바깥의 응원 세력이라고 여겼으니 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황제의 은덕은 끝이 없고 어지신 교화는 멀리 미쳐 그 사랑은 햇볕처럼 따뜻하고 그 빛남은 봄꽃과 같았습니다. [황제가] 멀리서 이런 소식을 들으시고도 쉽게 믿지 않으시고 저에게 명하여 가서 곡절을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왕께서는 사신을 보내 위로하지도 않고 소를 잡고 술을 빚어 우리 군사를 먹이지도 않으며, 도리어 낮은 언덕에 군사를 숨기고 강어귀에 무기를 감추어 벌레처럼 숲 사이에 기어다니고 무성한 언덕에서 숨차게 기어올라 뒤에 후회할 칼날을 몰래 내었으나 버틸 기세가 없었습니다. 대군이 아직 출발하기 전에 소규모 군대가 대열을 갖추어 바다와 강에 뜨니 물고기와 새도 놀라 도망하였습니다. 이런 형세로 보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미혹에 빠져 날뛰기를 아무쪼록 그칠 줄 아십시오. 무릇 큰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이익을 탐내지 않고 고상한 절의를 지켜려는 사람은 뛰어난 행실에 의지함이니, 난새와 봉황도 길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승냥이와 이리같은 사악한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장군(高將軍)의 중국 기병과 이근행(李謹行)의 변방군사, (() 지방의 수군과 유주(幽州병주(幷州)의 사나운 군사[惡少]가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 배를 나란히 하고 내려가 험한 곳에 의지하여 요새를 쌓고 [왕의]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다면 이는 왕에게 있어서 고칠 수 없는 가슴 속 깊은 병이 될 것입니다. 왕께서 만약 피로한 자들에게 노래부르게 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으려면, 그 이유를 자세히 논하고 자초지종을 분명하게 밝히십시오. ()인귀는 일찍이 임금의 수레를 함께 탔고 직접 위임을 받았으니 상황을 기록하여 보고한다면 일이 반드시 잘 해결될 것인데, 어찌하여 초조해 하며 스스로 일을 헝클어 놓으십니까?

오호라! 전에는 충성스럽고 의롭더니 지금은 역적의 신하가 되었구나! 처음에 잘하다가 끝에 가서는 나빠진 것이 한스럽고, 근본은 같았는데 끝이 달라진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바람은 높고 날씨는 절실하며 잎은 떨어지고 세월은 비감한데,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니 마음만 상하게 됩니다. 왕께서는 지혜가 뛰어나시고 위풍과 정신이 맑고 수려하시니, 겸손한 뜻으로 돌아가[流謙] 도를 따르는 마음[順迪之心]을 가지신다면, 제향[血食]을 제때에 받을 것이요 사직[()]이 바뀌지 않게 되어 길()함을 가려 복을 받을 것이니 [이것이] 왕에게 좋은 계책입니다. 삼엄한 싸움 중에도 사신은 다니는 법이니, 이제 왕의 신하 승려 임윤(琳潤)을 시켜 서신를 가져가게 하여 한두 가지 생각을 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