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5: 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
|
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
구삼국사,舊三國史(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
|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엄시수(淹㴲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어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이 건널 수 없었다.
주몽은 모둔곡(毛屯谷)에 이르러<위서(魏書)에는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세 사람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삼베옷[麻衣]을 입었고, 한 사람은 중 옷[衲衣]을 입었으며, 한 사람은 마름옷[水藻衣]을 입고 있었다. 주몽은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 삼베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재사(再思)입니다.”라고 하였고, 중 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무골(武骨)입니다.”라고 하였고, 마름옷 입은 사람은 “이름은 묵거(默居)입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성들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은 재사에게 극씨(克氏), 무골에게 중실씨(仲室氏), 묵거에게 소실씨(少室氏)의 성을 주었다. 그리고 무리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이제 하늘의 큰 명령을 받아 나라의 기틀을 열려고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사람들을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능력을 살펴 각각 일을 맡기고 그들과 함께 졸본천(卒本川)<위서(魏書)에서는 『흘승골성(紇升骨城)에 이르렀다.』고 하였다.>에 이르렀다.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하가 험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려고 하였으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었으므로 다만 비류수(沸流水) 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高句麗)라 하고 그로 말미암아 고(高)로써 성을 삼았다.
<다른 기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몽은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그] 왕에게 아들이 없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범상치 않은 사람인 것을 알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왕이 죽자 주몽은 왕위를 이었다.』> 이때 주몽의 나이가 22세였다. 이 해는 한(漢)나라 효원제(孝元帝) 건소(建昭) 2년(서기전 37), 신라 시조 혁거세(赫居世) 21년 갑신년이었다.
|
가만히 세 어진 벗을 맺으니 / 暗結三賢友 그 사람들 모두 지혜가 많았다 / 其人共多智
오이(烏伊)ㆍ마리(摩離)ㆍ협보(陜父) 등 세 사람이었다.
남쪽으로 행하여 엄체수에 이르러 / 南行至淹滯
일명 개사수(蓋斯水)인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건너려 하여도 배가 없었다 / 欲渡無舟艤
건너려 하나 배는 없고 쫓는 군사가 곧 이를 것을 두려워하여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개연히 탄식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인데 지금 난을 피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황천과 후토(后土)는 나 고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속히 배와 다리를 주소서.”하고,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고기와 자라가 나와 다리를 이루어 주몽이 건넜는데 한참 뒤에 쫓는 군사가 이르렀다.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 秉策指彼蒼 개연히 긴 탄식을 발한다 / 慨然發長喟 천제의 손자 하백의 외손이 / 天孫河伯甥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소 / 避難至於此 불쌍한 고자의 마음을 / 哀哀孤子心 황천 후토가 차마 버리시리까 / 天地其忍棄 활을 잡아 하수를 치니 / 操弓打河水 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 魚鼈騈首尾 높직이 다리를 이루어 / 屹然成橋梯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 始乃得渡矣 조금 뒤에 쫓는 군사 이르러 / 俄爾追兵至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곧 무너졌다 / 上橋橋旋圮
쫓아온 군사가 하수에 이르니 고기와 자라가 이룬 다리가 곧 허물어져 이미 다리에 오른 자는 모두 빠져 죽었다.
한 쌍 비둘기 보리 물고 날아 / 雙鳩含麥飛 신모의 사자가 되어 왔다 / 來作神母使
주몽이 이별할 때 차마 떠나지 못하니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어미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하고 오곡 종자를 싸 주어 보내었다. 주몽이 살아서 이별하는 마음이 애절하여 보리 종자를 잊어버리고 왔다. 주몽이 큰 나무 밑에서 쉬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왔다. 주몽이,“아마도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신 것이리라.”하고, 활을 쏘아 한 화살에 모두 떨어뜨려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얻고 나서 물을 뿜으니 비둘기가 다시 소생하여 날아갔다.
형세 좋은 땅에 왕도를 개설하니 / 形勝開王都 산천이 울창하고 높고 컸다 / 山川鬱嶵巋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 自坐茀蕝上 대강 군신의 위차를 정하였다 / 略定君臣位
왕이 스스로 띠자리 위에 앉아서 대강 임금과 신하의 위차를 정하였다. |
내용 5「주몽의 부여탈출 과정과 고구려 건국」의 비교
1) 삼국사기의 이 부분 역시 위서 열전 고구려전을 근간으로 하고 동명왕편(구삼국사)은 보충적으로 채택하여 편집하였으며
또 다른 우리민족에게 전해 내려온 사서인 고기(古記)의 내용을 집어넣어 완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2) 또하나, 동명왕편(구삼국사)과 위서를 반드시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3) 삼국사기를 볼수 있는 싸이트: http://koreandb.nate.com/history/saki/
동명왕편을 볼수 있는 싸이트: 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index.jsp?bizName=MK
위서를 볼수 있는 싸이트: http://db.history.go.kr/url.jsp?ID=jo
'고구려 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삼국사기와 동명왕편의 비교- 7 (0) | 2011.10.24 |
|---|---|
| 삼국사기와 동명왕편의 비교- 6 (0) | 2011.10.23 |
| 삼국사기와 동명왕편의 비교- 4 (0) | 2011.10.21 |
| 삼국사기와 동명왕편의 비교- 3 (0) | 2011.10.20 |
| 삼국사기와 동명왕편의 비교 - 2 (0) | 2011.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