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6: 송양과의 만남과 겨룸 그리고 송양의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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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동명성왕 본기) |
구삼국사,舊三國史(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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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靺鞨) 부락에 붙어 있어 침략과 도적질의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해서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니, 말갈이 두려워 굴복하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다.
왕은 비류수 가운데로 채소잎이 떠 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상류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되자, 사냥하며 찾아가서 비류국(沸流國)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松讓)이 나와 보고는 말하였다.
“과인(寡人)이 바다의 구석에 치우쳐 있어서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서로 만나니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주몽은] 대답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로서 모처에 와서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송양이 말하였다. “우리는 여러 대에 걸쳐서 왕노릇하였다. 땅이 좁아서 두 왕을 용납하기에 부족하다. 그대는 도읍한 지 얼마 되지 않으니 나의 부하가 되는 것이 어떠한가?”
왕은 그 말을 [듣고] 분하게 여겨, 그와 더불어 말다툼하고 또 서로 활을 쏘아 재능을 겨루었는데, 송양이 당해내지 못하였다.
2년(서기전 36)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 오므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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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달프다 비류왕이여 / 咄哉沸流王 어째서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 何奈不自揆 선인의 후예인 것만 굳이 자긍하고 / 苦矜仙人後 천제의 손자 존귀함을 알지 못하였나 / 未識帝孫貴 한갓 부용국으로 삼으려 하여 / 徒欲爲附庸 말하는 데 삼가거나 겁내지 않네 / 出語不愼葸 그림 사슴의 배꼽도 맞히지 못하고 / 未中畫鹿臍 옥가락지 깨는 것에 놀랐다 / 驚我倒玉指
비류왕 송양(松讓)이 나와 사냥하다가 왕의 용모가 비상함을 보고 이끌어 함께 앉아서,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어 일찍이 군자(君子)를 만나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대는 어떠한 사람이며 어느 곳에서 왔는가?”하니, 왕이, “과인은 천제의 손자요 서국(西國)의 왕이다. 감히 묻노니 군왕은 누구의 후손인가?”하니, 송양이,“나는 선인(仙人)의 후손인데 여러 대 왕 노릇을 하였다. 지금 지방이 대단히 작아서 나누어 두 왕이 될 수 없고 그대는 나라를 만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나의 부속국이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하였다. 왕이,“과인은 천제의 뒤를 이었지마는 지금 왕은 신(神)의 자손도 아니면서 억지로 왕이라 칭호하니, 만일 내게 복종하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하였다.
송양은 왕이 여러 번 천제의 손자라 자칭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의심을 품어 그 재주를 시험하고자 하여, “왕과 활쏘기를 원하노라.”하고, 그린 사슴을 1백 보 안에 놓고 쏘았는데 그 화살이 사슴 배꼽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힘에 겨워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옥가락지[玉指環]를 가져다가 1백 보 밖에 달아매고 쏘았는데 기왓장 부서지듯 깨지니 송양이 크게 놀랐다.
와서 고각이 변색한 것을 보고 / 來觀鼓角變 감히 내 기물이라 말하지 못하였다 / 不敢稱我器
왕이,“국가의 기업이 새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고각(鼓角)의 위의(威儀)가 없어서 비류(沸流)의 사자가 왕래함에 내가 왕의 예로 맞고 보내지 못하니 그 까닭으로 나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하였다. 시종하는 신하 부분노(扶芬奴)가 앞에 나와, “신이 대왕을 위하여 비류의 북을 가져오겠습니다.”하였다. 왕이,“다른 나라의 감추어 둔 물건을 네가 어떻게 가져오려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준 물건이니 왜 가져오지 못하겠습니까? 대왕이 부여(扶餘)에서 곤욕을 당할 때에 누가 대왕이 여기에 이르리라고 생각하였겠습니까? 지금 대왕이 만 번 죽음을 당할 위태한 땅에서 몸을 빼쳐 나와 요좌(遼左)에 이름을 날리니 이것은 천제가 명령하여 하는 것이라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습니까?”하였다. 이에 부분노 등 세 사람이 비류에 가서 북을 가져오니 비류왕이 사자를 보내어 고하였다. 왕이 비류에서 와서 고각을 볼까 두려워하여 빛깔을 오래된 것처럼 검게 만들어 놓으니 송양(松讓)이 감히 다투지 못하고 돌아갔다.
집 기둥이 묵은 것을 와서 보고 / 來觀屋柱故 말 못하고 도리어 부끄러워했다 / 咋舌還自愧
송양이 도읍을 세운 선후(先後)를 따져 부용국(附庸國)을 삼고자 하니, 왕이 궁실을 지을 때 썩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천 년 묵은 것같이 했다. 송양이 와서 보고 마침내 감히 도읍을 세운 선후를 따지지 못하였다.
동명왕이 서쪽으로 순수할 때 / 東明西狩時 우연히 눈빛 고라니를 얻었다 큰 사슴을 고라니라 한다. / 偶獲雪色麂 해원 위에 거꾸로 달아매고 / 倒懸蟹原上 감히 스스로 저주하기를 / 敢自呪而謂 하늘이 비류에 비를 내려 / 天不雨沸流 그 도성과 변방을 표몰시키지 않으면 / 漂沒其都鄙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 我固不汝放 너는 내 분함을 풀어다오 / 汝可助我懫 사슴의 우는 소리 심히 슬퍼 / 鹿鳴聲甚哀 위로 천제의 귀에 사무쳤다 / 上徹天之耳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 霖雨注七日 주룩주룩 회수 사수를 넘쳐나듯 / 霈若傾淮泗 송양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 松讓甚憂懼 흐름을 따라 부질없이 갈대 밧줄을 가로 뻗쳤다 / 沿流謾橫葦 백성들이 다투어 와서 밧줄을 잡아당겨 / 士民競來攀 서로 쳐다보며 땀을 흘리었다 / 流汗相眙 동명왕이 곧 채찍을 들어 / 東明卽以鞭 물을 그으니 곧 멈추었다 / 畫水水停沸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 / 松讓擧國降 이 뒤로는 우리를 헐뜯지 못하였다 / 是後莫予訾
서쪽을 순행하다가 사슴 한 마리를 얻었는데 해원에 거꾸로 달아매고 저주하기를,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 비류왕의 도읍을 표몰시키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니, 이 곤란을 면하려거든 네가 하늘에 호소하라.”하였다. 그 사슴이 슬피 울어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니 장마비가 이레를 퍼부어 송양의 도읍을 표몰시켰다, 송양왕이 갈대 밧줄로 흐르는 물을 횡단하고 오리 말을 타고 백성들은 모두 그 밧줄을 잡아당겼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긋자 물이 곧 줄어들었다.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한다. |
내용 6「송양과의 만남과 겨룸 그리고 송양의 항복」의 비교
1) 삼국사기와 동명왕편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같다.
다만 삼국사기는 동명왕편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간단하게 썼고,
신화적 내용는 줄곧 그랬듯이 여기서도 삭제하였다.
2) 작은 줄거리로 말갈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와 다물에 관한 이야기가 삼국사기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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