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단재 신채호) - 1

상 상 2011. 9. 8. 07:52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차 례

1. 교정의 이유

 

2. 자구(字句)의 교정

1) 서문에 “窮追極遠踰烏丸骨都“라 하였는데...

2) 예전(濊傳)에 “有廉恥不請句麗言語法俗大扺與句麗同”라 하였는데,

3) 한전(韓傳)의 “臣智惑加優呼臣雲遣支”이니

4) 변진전의 “차읍(借邑)”이니

5) 변진전의 미오야마(彌烏邪馬)니

6) 한전의 사로(駟盧), 막로(莫盧)와 변진전의 마연(馬延)이니,

 

3. 기사의 교정

1) 辰韓(진한)을 秦人(진인)의 자손이라 함이니

2) 동부여를 예(濊)로 오(誤)함이니,

3) 낙랑(樂浪)을 뺌이니

4) 발기(拔奇), 즉 신대왕(新大王)의 제2자의 차서를 오(誤)하여 장자(長子)라 하며,

 

4. 결론

 

 

 

1. 교정의 이유

 

조선사 연구의 제목을 가지고 무슨 까닭(何故-하고)으로

중국 위진(魏晋)시대 사관(史官)이 지은 삼국지 동이열전 같은 것을 취하는가.

조선 옛 문헌(古文獻)이 너무 멸망하여 상고(上古)의 조선을 연구하자면

마치 바빌론고사를 연구하는 자가 헤로도투스의 희랍사를 참고하지 아니할 수 없음과 같이

중국 고사(古史)에 힘입은 것이 적지 아니하나,

 

다만 사마천의 사기와 반고의 한서에 쓰인 조선열전은

중국 망명자로 조선의 한 구석(一隅-일우)을 훔쳐 거처한(도거-盜據)

위씨(衛氏: 위만) 일가(一家)가 한(漢)과 대항하던 간략한 기록이니(약기-略記)

조선열전이라느니보다 도리어 중국 떠돌이 도적(流賊- 유적)의 침략사라 함이 옳으며,

 

남북사, 수서, 당서 등의 동이열전은 비교적 상세히 갖추어져(상비-詳備)있으나

또한 각기 당시 중국에 관계된 일만 적었으니

이는 한족(漢族)의 대외 경쟁사(外競史-외경사)라 함이 옳거니와,

 

위진시대(魏晋: 위나라에서부터 진나라 시대)의 사관(史官)들은 그렇지 아니하여

단군왕검의 건국이 왕침(王沈)의 위서(魏書)에 보이며,

조선왕 부(否), 조선왕 준(準) 등의 간략한 역사가 어환(魚豢)의 위략(魏略)에 보이며,

고대 열국(列國)의 국경 관제 풍속 등이 진수의 삼국지에 보이어,

중국과 관계되지 않은 옛 역사(古史-고사)까지도 간혹 기재하였다.

 

이는 고구려 동천왕 때에 위나라 장수(衛將-위장) 관구검이 환도(丸都: 고구려 서울)에

처들어와(入寇-입구하여) 주워간 서적과 전설이 있어 이를 근거로 기록한(據錄-거록한)

것이 있은 듯하니, 당시에는 비록 국치(國恥-국가의 치욕)이나 후세의 사적 재료는

이에서 더 진귀한 것이 없을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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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