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동이전 서(序) 첫머리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서경(書經)에 ‘동쪽은 바다에 닿았고 서쪽은 사막에까지 이르렀다’하였으니,
구복(九服)의 제도(制度) 이내에 있는 것은 말할 수가 있으나,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황역(荒域) 밖은 여러 번의 통역을 거쳐야 이르게 되어,
[한인(漢人)의] 발걸음이나 수레가 닿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의 풍속이 중국과 다른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虞)나라로부터 주(周)대에 이르기까지 서융(西戎)은 백환(白環)을 바쳤고
동이(東夷)에서는 숙신(肅愼)의 조공이 있었으나,
모두 여러 해가 지나서야 도달하였으니 그 머나먼 거리가 이와 같다.』
위에 나와 있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황역(荒域)에 대해서는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이 되어있다.
『공손연(公孫淵)의 부조삼대(父祖 三代)가 계속 요동(遼東)을 차지하자,
천자는 그 지방을 절역(絶域)으로 여겨
[공손씨(公孫氏)에게] 해외(海外)의 일로 위임시켰다.
그 결과 결국 동이(東夷)와의 관계가 단절되어 중국과 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손씨가 차지한 요동부터 황역으로서
황역밖인 고구려부터 부여쪽인 오늘날 만주쪽과 한반도 쪽의 사정은
여러번의 통역을 거쳐 그 뜻을 알 수 있었다는 사실,
그 나라의 풍속을 알수 없었다는 사실,
동이와의 거리는 여러해를 지나야 도착할 만큼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을 적어놓고 있다.
따라서, 동이전에 기록해놓은 것들은
여러번의 통역을 거치고,
동이의 풍속을 모르는 채 기록하고,
이미 여러 해를 지날 정도로 거리가 매우 먼 곳의 일을 기록하다보니
동이전의 기록은 사실과 다른 것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미리 말하고 있다.
즉,
① 여러번의 통역을 거치기 때문에 통역의 오류가 발생하고,
② 풍속을 모르는 채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기록하여 기록의 부정확성이 발생하며,
③ 전달된 소식이 이미 여러 해를 지났기 때문에 시간상의 오류가 발생하고
④ 매우 먼 곳에서 전달된 소식이다 보니 사실의 왜곡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동이전을 비롯한 중국사서에 기록된 것을 마치 금과옥조 마냥,
무슨 절대적 진리인 양, 한자도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 자체인 양 떠드는 자들이
지금도 쌓여있다. 특히 역사학자들이라는 자들...
다시 말하지만 삼국지 동이전을 비롯한 소위 중국 정사라는 것에 거짓말과 틀린 기록,
특히 악의적으로 속인 기록도 버젓이 있다.
그러므로 단재선생께서
『중국 24사(史) 중 이른바 조선열전 혹 동이열전에 적힌 명사가 전해들은(傳聞-전문)대로 음역한 것도 있지만,
직접으로 당시 이두문의 본명을 그대로 가져다가 쓴 것도 적지 않으나,
수백년래로 고서(古書) 고증(考證)에 늙은 중국 문사(文士)들이
남의 역사에는 사정도 깜깜(격막)일 뿐더러 노력도 좀 아낀지라,
그리하여 모든 사실의 오류(誤: 틀림)나 문구의 와(訛: 그릇됨)도 발견한 이가 없거든,
하물며 저들(彼等-피등)의 눈에 서투른 일반명사이랴.
그러므로 그 조선열전 등의 와(訛: 그릇됨-와전), 오(誤: 틀림-오류), 첩(疊: 겹침-중첩), 누(漏: 빠짐-누락)가
또한 대단하여 신용하기 위험한 기록들 이다』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한마디로 중국사서에 있는 우리민족의 역사 즉, 조선전 동이열전류들은 신용하기 위험한 기록들,
믿기 어려운 기록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동이전 스스로 말한 바 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단재선생께서 동이전을 대표적으로 지적하신 것이고 이를 교정하신 것이다.
역사학자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역사의 주인으로서 너희들이 기록한 우리역사 중에서 이것은 맞고 저것을 틀렸으며 바른 것이 이런 것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일을 하신 분이 단재선생이시고 바로 여기에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아직도 중국사서에 휘둘려서 뭐가 진짜인지 구별도 못하고 그저 중국인의 개가 되어
중국 사서를 지키느라고 중국 사서 그대로를 역사적 증거로 들이대는 무리들...
이런 자들이 아직도 정통 사학자라고 으시대고 날뛰는 우리 사학계의 현실을 볼때
단재 선생이 얼마나 학문적으로 앞선 분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사서의 진위도 못 가려 맹목적으로 매달리면서 거기서부터 역사를 출발하는 자들과
사서 자체를 분석하는 분의 수준 차이는 심하게 말해서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말할수 있다.
아직도 장님 수준으로 헤매고 있는 지금의 사학자들과
이미 벌써 약 백년전에 사서를 꿰뚫어 볼수 있는 실력을 가지신 단재 선생을 볼때
단재선생께서 학문적으로 얼마나 앞서 있는지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국사학자라는 자들이 똥인지 떡인지도 분간 못하면서 역사적 증거라고 들이대는 중국 사서...
일제 식민지 사학자, 왜놈들의 개가 되어 소위 실증사학이라고 으시대면서 들이미는 중국사서...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면서 들이미는 소위 한국의 국사학자라는 것들에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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