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연구초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단재 신채호) - 2

상 상 2011. 9. 9. 09:55

위진(魏晉: 위나라와 진나라) 사관(史官)의 기록 가운데서 무슨 까닭으로 삼국지만 취하는가.

 

전술(前述)한 모든 사관의 기록에

왕침(王沈)의 위서(魏書)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에 나라를 세웠다.(往在二千載有檀君王儉立國阿斯達)”의

수십자가 고려 승려 일연(여승 일연- 麗僧一然)의 삼국유사에 전하였을 뿐이며,

 

어환의 위략(魏略)은 배송지(裵松之)의 삼국지 주(註)에 인용한 4, 5조가 전하였을 뿐이요,

그 두 책(兩書-양서)의 전부가 다 없어졌으므로(缺亡: 결망하였으므로) 하릴없이 삼국지만을 취하게 됨이며,

 

선배 유학자(先儒: 선유)는 늘 삼국지 동이열전을 버리고(捨-사하고) 후한서의 것을 취하였으나,

이는 다만 후한이 삼국의 앞시대(前代: 전대)인 줄만 알고

후한서 저자 범엽이 삼국지 저자 진수보다 백여년 이후의 사람임을 생각지 아니함일뿐더러,

양 동이열전을 대조하면 후한서의 것이 명백히 삼국지의 베껴 쓴 기록(抄錄: 초록)이건만 이를 깨닫지 못함이라.

그러므로 후한서를 버리고(捨-사하고) 삼국지를 취함이다.

 

무슨 까닭으로(何故-하고로) 이를 취하는 동시에 교정을 가하는가.

 

천 년 이전에는 인쇄(印版:인판)가 없어 모든 서적(一致書籍: 일치서적)이 모두

손으로 베껴 써서(초사-抄寫) 전하므로

전도(顚倒: 거꾸로 됨), 와오(訛誤: 틀림), 탈락(脫落), 증첩(增疊)된 자구(字句: 글자와 어구)가 허다하여

중국의 경사(經史: 경서와 사서)가 모두 고증하는 사람(考證家: 고증가)의 손을

거친(경한) 뒤에야 읽을 수 있게(可讀-가독하게) 되었는데,

 

조선열전 동이열전 같은 것은 저들(피등-彼等)이 고증(考證)에 힘을 쓰지(用力-용력하지)아니하였으며,

설혹 힘을 썼다(用力-용력)할지라도 자기들(自家-자가)의 눈에 서투른 인명, 풍속, 사정 등을 잘 모르므로

그 교정한 것이 더 착오된 것이 있으니 교정하지 아니할 수 없음이 하나요,

 

저들(피등-彼等)이 그 유전적 자존성으로 타국을 업신여겨 보고(藐視: 막시하여)

동(東)이라 칭한 것도 분통 터질 일이나(可痛-가통하나) 그러나 이는 사실에는 관계가 없거니와,

다만 고의로 속인 기록(誣錄-무록한 것)도 있으며,

혹 전해 들은(傳聞-전문) 것으로 인하여

틀리게 기록(오록-誤錄)한 것도 있어 교정하지 아니할 수 없음이 두 번째이니,

그러므로 저자의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이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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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 설 >

오늘 내용 모두 중요한 내용입니다

 

 

1. 천 년 이전에는 인쇄가 없어 모든 서적이 모두 손으로 베껴 써서 전하므로

전도(顚倒: 뒤집힘), 와오(訛誤: 틀림), 탈락(脫落), 증첩(增疊)된 자구(字句)가 허다하여

중국의 경사(經史: 경서와 사서)가 모두 고증하는 사람의 손을 거친 뒤에야 

읽는 것이 가능하게(可讀-가독하게) 되었다.

 

2. 조선열전, 동이열전 같은 것은 저들이 고증(考證)에 힘을 쓰지 아니하였으며,

설혹 힘을 썼다 할지라도

자기들의 눈에 서투른 인명, 풍속, 사정 등을 잘 모르므로 그 교정한 것이 더 착오된 것이 있다.

 

3, 저들이...고의로 속인 기록(誣錄-무록한 것)도 있으며,

혹 전해 들은(傳聞-전문) 것으로 인하여 틀리게 기록(오록-誤錄)한 것도 있다.

 

즉, 중국정사라고 하는 것들도 손으로 베껴 써서 전한 것들이어서 틀린 글자가 허다하고, 

우리역사인 조선열전, 동이열전 같은 것은 그나마 고증에 힘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증을 했다고 하더라도 잘 모르고 교정하여 교정한 것이 오히려 더 틀린 것이 있고,

중국인들이 고의로 속인 기록도 있고, 전해들은 것이기 때문에 틀리게 기록한 것도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중국 정사라는 것들이 고의로 또는 모르고 틀리게 쓴 우리역사가 허다하다는 말씀이다.

 

다시말해서 중국정사라는 것들도 사료로 쓸려며는

진위여부와 오류를 바로 잡고난 뒤에야 쓸 수 있다는 말씀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소위 중국정사를 비롯한 중국 사료에 기록된 것들이

마치 전부 사실인 양, 한자도 틀림없는 역사적 진실 자체인 양,

떠드는 자들이 대다수이며,

특히 소위 실증사학을 부르짓는 일제 식민지 사관의 개들, 소위 국사학자들의 짓이다.

도대체 자기들이 들이대는 사서의 기록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구분 못하는 자들이 

무슨 객관적 역사를 들먹일수 있으며, 과학적 역사를 들먹일수 있다는 말인가?

 

오로지 왜놈들의 역사관에 맞추어 춤추는 꼭두각시들이 무슨 역사를 말할수 있다는 것인가?

         

1) 원본출처: 조선사연구초(인터넷 판 - 위키문헌)

http://ko.wikisource.org/wiki/%EC%A1%B0%EC%84%A0%EC%82%AC_%EC%97%B0%EA%B5%AC_%EC%B4%88

 

2) 참고문헌: 조선상고문화사(외), 비봉출판사, 2008년판

 

* 조선사 연구 초(朝鮮史硏究草), <저자: 신채호>

 

가. 고사상(古史上) 이두문 명사 해석법

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중 동서(東西) 양자(兩字)의 상환(相換) 고증(考證)

다. 삼국지 동이열전 교정

라. 평양 패수고

마. 전후 삼한고(前後 三韓考)

바. 조선역사상 일(一)천년래 제일 대사건